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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n

아들의 좌절을 보는 엄마 아빠의 다른 시각


모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갔다.

근데 6살된 우리 아들, 언제나처럼 또 물 앞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 가장 얕은 곳인데도 그다지 재미를 못느끼는 듯, 밋밋한 표정으로 튜브를 걸친채 배회하고 있을뿐이다. 튜브를 밀거나 끌어줄라해도 무섭다고 싫어하며, 물이라도 끼얹으면 아주 난리가 난다. 아들과의 놀이공간에서 수영장은 당분간 배제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한눈을 팔다가 다시 바라보니, 한 여자 아이가 우리 아들 튜브에 연결된 줄을 끌어당겨주고 있었다.
둘은 금새 한껏 소리를 지르며 즐겁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아들의 얼굴엔 활기가 넘쳤고,  그 눈빛엔 그야말로 행복이 가득 담겨 있었다.
깡마른 체구의 여자아이는 아들보다 살짝 키가 커보였는데, 아들보다 한두살 위 같았다.


여자아이가 아들의 손을 잡아 끌며 더 깊은 곳으로 가자고 한다. 울 아들이 튜브를 버리고 여자아이를 따라갔다...
좋아하는 로봇 케릭터가 그려져 있어, 수영은 안하더라도 집에서 잘 가지고 놀던 그 튜브를 미련없이 버린것이다..

그렇게 옮겨간 수영장 구석에서 둥근 모서리를 따라 같이 미끄러지는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평소엔 눈에 물만 들어가도 펑펑 울던 녀석이, 미끄러져 물속에 푹 빠졌다 나와도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 하고 있다.
벌써 다른 이성과 어울리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묘한 상실감 같은게 느껴졌다.
(앞으로 머리감을때 눈에 물들어 갔다고 울면 혼내줘야겠다;;;)


아들의 수영모자가 벗겨지자 아이엄마가 가서 씌워줬다. 결과적으로 아이들만의 공간에 이방인이 끼어든 형국이 되버렸다.
갑자기 썰렁해진 분위기 속에서 여자아이가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아들을 따라, 우리 부부도 그 여자아이를 찾아나섰다.
그 여자아이는, 친척인지 친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른 몇명의 아이들과 어울려 같이 커다란 튜브에 매달리며 놀고 있었다.

숫기없는 우리 아들은 차마 거기에 끼진 못하고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고만 했다. 아마도 여자아이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거려도 그 여자아이는 또래들과의 즐거운 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 엄마가 안타까워한다. '어떻게 너무 불쌍해...' 아들의 상심 그 자체를 함께 느끼는 듯 했다.
나와는 감상이 다르다.. 난 소극적인 아들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사실 나도 그 시절 그랬을 거다. 좋으면 좋다고, 같이 놀고 싶으면 같이 놀자고... 당당히 그렇게 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이제 겨우 6살이니.. 나같은 경우 20대 초반은 가야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럼에도 마땅찮은 기분은 어쩔수 없다.
아빠란 자신이 할수 없는 걸 자식한텐 기대하는 모양인가보다.

 
엄마가 결국 낙동강 오리알이 된 아들을 데리러 갔다.
근데 아들이 성질을 낸다. 엄마의 손을 뿌리치며 혼자 있고 싶어했다.
엄마도 속상한지 한마디 한다. '저 누나때문에 그래?'
아들은 대답을 회피하며 더욱 신경질적이 되어버렸다. 평소 순한 녀석인데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와이프의 옆구리를 찌르면 속삭였다.
'이것도 남녀문제잖아, 아예 언급되는 거 자체가 싫은 거야, 벌써 자존심을 느낄땐가봐'

그러자 울 와이프가 또 아들한테 묻는다. '정말이야? 창피해?'
(으이그 못말린다... 엄마는 그게 또 서운한가 보다.)

난 짐짓 아무일 없는 듯 모른체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지나치는 말처럼 아들에게 한마디 했다.
 '아까 수영장에 그 누나 정말 이쁘더라' 아들녀석이 갑자기 씩~ 웃어버린다.

사실 아들은 엄마를 훨씬 더 좋아한다. 무조건 언제나 제편이 되어주는 엄마이기에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만회의 기회가 오는가 보다.

엄마하곤 말 못할 이야기, 아빠하곤 나눌 수 있는, 우리 둘만의 이야기를 꾸릴 수 있는 시기가 벌써 오고 있는가 싶다.
요즘 아이들 역시 참 조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