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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n

드라마가 설레는 한 아저씨 이야기

어느날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부부 대화 주제의 90% 이상이 아이들에 대한 것이라는 거다.
맞벌이를 하며 아이 둘을 키우면서, 부부로서보다는 부모로서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아이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이에게도 좋은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또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도 각자의 삶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부부가 둘만이 공유하는 관심사를 찾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각자의 취향과 가치관, 관심사가 서로 다르다 보니 어느 순간 작심한다고 공감대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나누며 즐길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아이들에 관한 것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고 아내에게 제안해봤지만 서로 흥미를 느끼는 분야자체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본질적인 문제라든가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곧잘 꺼내지만, 아내는 이런 이야기를 지루해 했고 대신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 하기를 좋아했다. 결국 내가 아내의 관심분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아내의 평범한 일상으로 말이다.
직장과 육아로 일상이 여의치 않은 아내가 그나마 짬짬이 즐기는 것은 TV였다. 특히 어느 나른한 휴일 오후에 드라마 재방송을 챙겨보던 아내의 얼굴에 비친 화사한 미소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나도 더불어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TV를 보기 시작했다.


가끔 스포츠중계나 뉴스정도를 보던 내가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겨보게 되면서 변화를 실감하게 됐다.. 서먹서먹했던 장모님과도 할 이야기가 생겼고, 회사의 여직원들과도 수다를 떨게 되었다. 세상의 절반(?)과의 소통이 한결 원활해진 기분이다.
또한 드라마를 보면서 오랫동안 익숙하지 않았던 감정인 ‘설렘’을 느끼게 됐다. 그런 설렘은, 계절의 변화에도 둔감했던 내게 감수성을 선물해 줬다. 아파트 뒷산 오솔길의 풍광에 달달했던 드라마의 주제곡을 환청처럼 떠올리며 대자연의 손짓을 만끽하는 충만함은 드라마에 빠져들기 전엔 느낄 수 없었던 행복이다.

 


혹자는 ‘아저씨가 주책’이라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부분은 오히려 남성들이 한번 되짚어 봐야 할 문제일 수도 있다.

오늘날 가계의 소비를 결정하는 것은 대개 여성의 몫이다. 방송, 출판, 공연, 쇼핑 등 문화상품 전반이 여성 위주다. 심지어 건설업체조차 아파트의 브랜드 이름을 여성이 선호하는 스타일로 짓는 걸 보면, 이 시대의 남성이 얼마나 소비와 문화에서 소외되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내 또래의 남자들과 대화를 해보면 대화주제가 너무 한정적으로 치우쳐 있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가장 바쁘게 일해야 하는 시기이다 보니 생업과 관련된 고민에만 집중할 뿐, 다른 분야엔 그다지 관심이 없고 그럴만한 여유도 없어 보인다. 바쁜 것도 이유지만, 평소 더불어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에도 서툴다. 그러니 가끔 작정하고 아이나 아내와 대화를 시도해봐도 막상 할 이야기가 궁하기 십상이다. 특히 아이들하고는 관심사가 다르고 심지어 상식과 가치관에서도 심각한 괴리가 발생하곤 한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해왔지만, 막상 가족과 더불어 누릴 게 없는 중년의 비극이다.

 

주변과 소통한다는 것, 그 시작은 관심의 공유가 아닐까 싶다. 난 그것을 TV에서 찾아냈다. TV는 바보상자이기도 하지만, 이 시대 문화의 총화이기도 하다. 우리가 입고 먹고 즐기고 관심 갖는 것들이 TV 속에 잔뜩 펼쳐져 있다.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보다가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저런 바지 하나 사 입으면 어때?’ ‘이번 주말엔 저런 데 가볼까?’
TV를 보기전이나 TV를 보기 시작한 이후에나 세상은 여전히 똑같다. 하지만 세상을 보는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주변과 더불어서 말이다.

 

월간 '마음수련' 7월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