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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드라마&시트콤

[여친구] 날 설레게 만든 이승기의 찌질함



[남자의 통과의례, 풋풋한 찌질함에 대해서]

내여자친구는 구미호(여친구)를 보면서 뜨끔했다.
차대웅 저 녀석은 왜 저리 찌질할까.. 근데 그 모습을 보는 난 왜 이리 흐뭇해지는건지..
캠퍼스를 떠난지 벌써 십년도 더 지났건만 갑자기 젊어진 기분이다.

드라마가 공감이 가려면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차대웅의 모습이 불편한 이유는 바로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냉정히 스물살 시절을 돌아보면 그 땐 다 저렇게 찌질했다. 나도 내 자신이 상당히 잘났다고 믿었었기에 한 찌질했었다. (물론 드라마에선 상대가 무시무시한 구미호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여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다면, 다시말해 여자가 마음을 훤히 보여준다면, 대웅 이상의 매너를 보여줄 수 있는 스무살 청년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여자가, 자신을 충실히 따라주는데, 그녀를 더욱 아껴줄 수 있는 주변머리를 어찌 벌써 챙길수 있으랴...그럴수 있는 인간이라면 사는 맛도 못 보고 늙어버린 가련한 청춘일것이다.
에리히 프롬이나 헤르만 헤세를 읽을 수는 있어도 눈 앞의 여자와는 별개의 이야기가 되기 쉽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과거를 과장해서 기억하기도 한다. 그땐 참 로맨틱했고...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고..배려가 있었고.. 근데 사실 찌질했던 경우가 더 많았다.
차대웅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낯뜨거워지는 나 자신을 보니, 나 역시 분명 그랬었다.

만만한 미호에게 뜻밖의 전화가 왔다. 오직 자신만이 그녀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유일한 창인줄 알았는데, 그녀를 찾는 또 다른 인간이 있다는 것이 황당하다. 더군다나 남자다.

믿을수도 없지만 인정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만한 상대에게, 자신이 배제된 또다른 생활이 있다는 것을 납득하기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연애하면서 그걸 깨닫지 못한 남자는 결혼하면서 문화 충격을 받는다. 결혼이란 것이 오직 그녀하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가족들과도 연결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철이 들기 마련아닌가..
좀 비약이 심했지만, 이렇듯 풋사랑의 중요한 특징은 소유욕과 자기모순일 것이다.

만만한 그녀앞에선 한없이 강하고 냉정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자기모순에 빠지곤 한다.
늘 자신만을 아껴주고 위해주는 모습에 익숙해지다보면, 기고만장해질수 밖에 없다. 차대웅처럼 상대에게 상처가 될 말도 쉽게 뱉을수있고, 다른 곳가서 커플링을 숨기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쬐금만 여자가 흐트러지면, 남자는 불안해지고 약해지기 쉽다. 바로 차대웅처럼...
만만한 그 모습을 공짜로 마구 누리다보면 그야말로 쉽게 코를 꿰게 된다는 말이다.

바로 그렇기에 도도하고 자의식 강한 여자는 요란하기만 할뿐 실속이 없는 거고, 남자한테 적당히 수그릴줄도 알고 잘 따라주는 여자가 수많은 남자의 얼과 혼을 빼 놓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제 방영분에선, 막판에 대웅이 혜인(박수진 분) 앞에서 기어이 미호를 인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전이다. 미호에게 혜인 앞에선 서로 사귀는 걸 비밀로 해주면 안돼냐고 말했던 대웅이건만, 벌써 그 말의 부끄러움을 깨달은 걸까..

결국 여자하기 나름인거 같기도 하고..
(물론 드라마 설정 상, 인간이 아닌 미호를 연인으로 인정하지 않을수 있는 명분이 있겠지만, 만만한 여자에게 기고만장한 남자는 별 요구를 다하기도 한다)

예전의 부끄러운 자화상,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을 그려주는 [여친구]가 난 재미있다.

근데 부끄러운 과거를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도 많을 것이고 이런 개연성이 드라마의 인기와 꼭 연결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난 이런 어눌한 모습을 능청맞게 연기해주는 이승기도 보기 좋다.
이렇게 찌질한 것이 풋풋한 매력도 될 수 있는 건 그 시절만의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서른 넘어서도 여전히 저런다면 비극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