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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on going

위대한 디지털시대에 책을 집어야 할 이유





퇴근길, 전철을 타보면, 손에 무언가를 들고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기도 하며, 웹서핑을 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예전엔 전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도 제법 많았는데, 요즘은 예전에 비해 그닥 눈에 띄지 않는 편이다.

언제부터인가 긴글을 읽는 게 참 힘들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아고라같은 게시판에서 긴글을 만나게 되면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큰 관심이 가는 사안이 아니라면 쉽게 포기하기 일쑤다. 긴글 한번 제대로 읽으려면 단단한 각오가 필요해 졌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상당한 두뇌활동을 요구하는 것같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려면, 머리속에 읽고 있는 내용을 재구성해야 할때도 있고 때로 상상력도 필요하다. 이런 당연한 행위가 통 쉽지가 않아졌다. 요즘같이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영상과 이미지가 인터넷과 티브이에 난무하는 세상에 길들여진 나는 그렇다. 그냥 머리를 비우고 숨가쁘게 휙휙 넘어가는 자극적인 영상과 사운드 효과에 익숙하다보니, 책을 읽을때처럼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거나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논평을 읽을때나, 소설을 읽을때면 평소에 통 사용하지 않던 무언가를 억지로 꺼내쓰는 기분마저 들때가 있다. 이렇게 흘러가다보면 앞으론 긴글을 더욱 멀리하게 될지 모르겠다.
 


미래의 어느날, 인간은 기계가 시키는 대로만 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근데 이미 그런 시대가 왔다는 말이 있다.

 

 '100미터 앞에서 좌회전하십시요'  '전방에 과속탐지기가 있습니다. 서행하세요'

네비게이션에 익숙해진 현대인을 풍자한 어느 만화속 우스개소리지만, 되짚어 볼만한 의미가 있다.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엔, 조금 고생은 할지언지 이정표나 지도를 보면서 잘 찾아갔던 사람도, 이제는 길을 파악하고 경로를 따지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음을 실감할 것이다.


디지털치매라는 말을 접한 적이 있다. 휴대전화에 전화번호가 자동으로 저장되어 있다보니 전화번호를 외울일이 없다. 현재 내가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는 3~4개 정도인거 같다. 10년전에는 훨씬 많은 번호를 외우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두뇌는 사용하지 않으면 감퇴될 것이다.
십년이상 집안에 갇힌 채 다리를 쓰지 않는다면 그는 걸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평생 새장에 갇힌 새 역시 날수 없을 것이다. 점점 현대인은 디지털의 축복 속에서 상상할 필요성을 상실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책을 읽고 사색을 즐기는 사람이 많겠지만, 휠씬 더 많은 사람들이 긴 글 읽는 걸 귀찮아 하게 됐고 소설책의 매출과 독서량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우리 다음 세대는 더욱더 강력한 디지털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나의 세대만 해도 어린시절 동네 아이들과 밖에서 놀던 시간이 많았고 빈둥대며 독서할 기회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사회적인 환경과 풍부한 디지털 콘텐츠 덕분에 밖에서 놀 일도 거의 없으며 독서말고도 할게 무척 많다.


나는 적어도 네비게이션 없이 몇년이상 운전이라도 해봤다. 또 아직 네비게이션이 완벽하지는 못한 시대다. 하지만 완벽한 네비게이션이 일상이 된 시대에 처음부터 네비게이션을 따라 운전하게 될 다음 세대는, 네비게이션을 벗어난 경로를 상상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이렇게 몇세대가 지나다보면 상상할 수 없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을 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암튼 오늘은, 디지털의 가호아래 인터넷으로 책 두권을 주문했다. 내꺼 하나 아들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