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6 11:08


회사에서 회식을 하고, 고시 준비하는 친구의 자취방에 갔다.

여전히 익숙치 않은 고된 일상에 눌린 사회 초년생과 미래가 불안한 고시준시생의 술자리는 별로 유쾌하지 못했다.
 
자정이 다 되던 무렵, 우리는 내기를 했다.

서로 예전에 만났던 여성 중 한명을 지목한 후, 그 상대에게 지금 전화하여 내일 약속을 잡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친구도 부담스런 상대를 지목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였고, 상대의 연락처도 몰랐다.

연락처는 각자 대신 알아봐 주기로 했다.

여학우들은 졸업 후 제법 시간이 지난 상태라 추적이 쉽지는 않았다.

 

"그 애 연락처 알려면 누구한테 물어봐야 해??"

 

한밤 중, 갑자기 술취한 사내의 전화에 많이들 황당했을 거다.

대부분 자취생이였기에 다행이였다.

 

인상적인 것은, 남자들은 별 말없이 아는 정보를 알려줬으나, 여자들이 문제였다.

 

"왜?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한데??"

 

전화를 돌리다 보니 술이 깼다. 후회가 밀려 왔다.

이짓을 해야 하나... 자신도 없었고, 자존심만 상할 것 같았다.

 

친구의 전화릴레이는, 최종 목표를 위한 마지막 고비 에 이르렀다.

바로 그녀의 단짝이였다.

 


옛 생각이 났다.
난 그녀를 좋아했고, 단짝은 나를 좋아했다.
그 단짝을 친구가 좋아 했다.
친구때문에 단짝을 멀리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단짝은 여성적이고 순한 아이였다.
반면 그녀는 여린듯 보이는 미소 뒤에 냉정한 가슴을 가진 공주였다.

 

옆에서 통화내용을 듣고 있자니, 단짝은 연락처를 알려줄 의사가 없어 보였다.
친구는 난감해 하며, 질질 끌었다.

난 전화기를 빼앗다.

 
"야..."
그리곤 다시 친구에게 수화기를 돌려줬다.
친구는 바로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술김에 또다시 단짝에게 실례를 한거 같다.
과거 단짝에게 냉담했던 기억이 아픔이 되어 찔러왔다.
난 원래 못된 구석이 있나 보다.

 

이젠 전화를 해야 했다.

 

심호홉을 했다.
번호를 찍어 누르며 기원했다.
받지 않기를... 이런 내기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겼다.


 

종로의 밤거리는 활기 찼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셀레임이다.
그 동안 답답한 사무실에서 너무 눌려 지냈나 보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모두 밝아 보였다.

정확히 7시에 맞춰 왔다. 마음이 들뜨고 긴장됐다
늘 그렇듯 조금 늦게 나타나겠지...

 

그녀가 먼저 와 있다가 밝게 맞아 줬다. 생소했다.

 

여전히 미모는 눈부셨고, 행색은 유행의 첨단에 있었다.

 

세월의 흔적도 보였다.
화장이 상당히 두꺼워 졌고, 랜즈를 오래 꼈는지, 눈을 자주 깜박였다.

 

더 분명한 세월의 흔적을 발견했다.

지나치게 겸손해졌다. 나의 말 한마디마다 성실히 반응해 줬고, 과거의 냉냉했던 이미지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술값까지 부담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였다.
외로움의 시간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제 통화의 순간이 생각났다.

 

평소의 지론대로 간결하게 제안했다. 언제나 말을 절제하기는 힘든일이다.

 

"나 유월이야, 오랜만이다. 응, 그래,     보고 싶어. 만나줘"

 

친구의 시선을 의식하며, 수화기에 대고, 담담하게 그렇게 짧게 말했다.
[만나줘]라는 말은 하기 거북했지만, 감정을 싣지 않고 내뱉을 수 있었다.

그 하늘 높은 자존심을 존중했다.

 

몽롱했던 술기운 속에서 내 생각이 적중했다고 자족했었다.
오해였다. 그녀는 외로웠던 것이다.

 

 

술을 기울이며 서로의 자존심을 자극할 만한 과거이야기는 철저히 배제했다.
말을 많이 하는 그녀가 익숙치 않았다. 보기 좋고 편했다.

 

내 갑작스런 연락의 의중이 궁금했을 꺼다.
문득 그녀가 또 물어본다.

 

"나한테 부탁할 꺼 있지, 도대체 뭔데?"

벌써 세번째다. 대답이 궁해서 "나중에"만 연발했지만, 그녀의 밝은 얼굴이 변할 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손을 잡았다.

 
"할 말이 있어"
그녀는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앞으로 자주 보자"

여전히 품위가 있었다.

 

여태까지의 분위기로 보아, 행복해 할만한 연출이건만, 어마어마한 자제력으로 무심한 표정을 지켜내더니.
"그게 다야? 알았어" 가 전부였다.

 

잘났다.

 

밤이 늦어, 난 학교 앞에 있는 친구네 자취방으로 가야했다.

친구에게 보고를 하고 내기의 전리품도 챙겨야 한다.

그녀의 집은 학교 에서 제법 멀었다.

그녀가 자신의 집은 학교에서 가까우니 택시타고, 학교까지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녀의 콧대가 세월에 무뎌질 날을 난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늦은 시간에도 학교앞에는 사람들이 제법 다녔다.

 

큰길을 나서며, 당혹스러움을 가눌 수 없었다.

 

그 단짝과 마주친 것이다.

 

어제 일로 대단히 민망했던 난, 고개를 돌렸다.
둘은 한참을 반갑게 이야기했다.
초조하고 부담스러운 순간이였다.
 
그녀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단짝이 나를 돌아봤다.
긴장됐다.
단짝은 언제나 처럼 밝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곧 결혼한다며? 그렇게 이쁘다며?"

 

충격이였다.
단짝에게 그런 면이 있을 줄 몰랐다.

내가 아는한, 단짝은 못 먹는 감 찔러볼 그런 심술쟁이가 아니였다.
그 순한 애한테 오랜시절 내가 참 모질었구나 싶었다.

 

단짝에 대한 원망보다는 놀라움이 더 컸다.

단란함이 넘치던 우리 두사람을 순식간에 어색한 적막으로 몰아 넣고, 단짝은 떠나갔다.
단짝의 뒷모습 역시 초라했다.

 

변명을 해볼까도 생각해봤다.
나의 냉철한 언어로 단짝의 질투심이 빚어낸 조작이였음을 설득할 자신은 있었다.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 어제 단짝에게 한일이 내내 미안했는데, 그녀 앞에서 단짝의 인격을 죽이는 짓은 스스로에게 너무 부끄러웠다.
사실 효과도 의심스럽긴 했다.

 

말없이 큰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학교 앞 길이 이렇게 긴 줄 몰랐다.

 

그 어색함은 어찌 보면 참 웃기는 장면이였다. 난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갈께"
택시를 잡아타고 갔다.

 

단짝한테 미안하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그녀에게도 못할 짓 했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다.

 

동시에 두여자를 생각하지 못하는 거 보면 난 참 성실한가 보다.


내게는 낯설었던 그 순한 미소는 이제 내 기억 속의 그녀를 바꿔 놓았고, 이대로 고정될 것이다.

 

쓸쓸히 캠퍼스를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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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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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lick this link to be able to remove yourself from list 2012.05.28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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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rop by terry macalmon 2012.05.28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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