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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남을 당할자


CW Lee

그는 집념의 사나이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반드시 얻고야 마는 강력한 의지를 지녔다.

외모는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당쇠를 연상시킨다.

 

대학시절, 하교길에 마당쇠의 순정을 불태우는 여대생을 목격했다.

그 길로 따라가 사는 곳의 아파트 라인을 알아냈다.

경비아저씨에게 청춘의 순정을 운운하며 기어이 정확한 주소를 접수했다.

그리곤 대문 상단에 박힌 '천주교 교우의 집' 마크를 확인했다.

 

일요일 오전 인근 성당에서 그녀를 발견하곤, 대장정의 시작을 예감했다.

성당에 등록했다.
청년부 모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당쇠의 눈은 작았다.
그녀와의 공식적인 첫 인사에서 그 작은 눈은 그의 설레임을 감추기에 유리했다.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꾸준한 출석과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제 그는 어엿한 그녀의 성당교우가 되었다.

 

그는 절대 정보의 가치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힘든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온전히 그녀의 대학 후배와의 술값으로 지출되었다.
후배는 그의 가당찮은 도전에 동정심을 느꼈다.
그 가상한 용기에 수업시간표와 조우가 가능한 장소를 탐문하여 알려 줬다.
 
비가 제법 굵은 날, 그가 움직였다.

학교 화장실에서 옷 입은 그대로 전신 샤워를 했다.

그 몰골로 당당히 나아가, 많은 친구들 사이에 있던 그녀에게 물에 젖은 장미 한송이를 내밀었다.

그리곤 말없이 돌아 섰다.

 

그녀의 반응을 확인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그녀의 친구들 사이에서 장기간 회자 될 것이란 사실뿐이다.
그 사건을 접한 그녀의 학교 후배가 고무되었다.
믿기지 않는 위대한 도전은 이렇게 가시화되었다.

 

이제 마당쇠는 성당에서 당당히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결코 과도한 관심으로 그녀를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듬직한 친구에서 한 발자국 더 내밀고 있었다.

 

그녀의 생일날이다.

성당친구들과 축하자리를 마련했다.
마당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슈퍼 꽃남이 그녀에게 목걸이를 선물했다.
얼굴값 하는 꽃남은 품위를 유지한 채, 준비해간 감미로운 원고를 읊었다.

위기였다.

강력한 의지는 때로 자신도 생각 못하는 의외의 행동을 낳기도 한다.

'그 목걸이 좀 줘봐'
마당쇠는 건네 받은 목걸이를 한동안 침통한 표정으로 들여다 봤다.
부정하고 싶은 욕구만 강했을 뿐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입 속에 넣어 버렸다.

 

경악스러운 광경이였다.

입속에서 뽑아져 나오는 축축한 목걸이처럼 꽃남의 낭만은 생명을 다했다.

 

모두가 침묵했다.

'저 여자는 건들리지 말아야 겠다.'라는 인식이 형성되었을지도 모를일이다.

 

그 날 이후 성당에서 경쟁자가 사라졌다.

남자는 자신의 의지로 사랑을 관철하며 성취감을 느낀다.

 

반면 여자를 행복하게 하는 것

[그가 원한다.]

이 말이 사실일지 모르겠다.

 

실제로 마당쇠는 그녀와 결혼을 했고, 내가 봤을 때 그는 그다지 성실한 남편은 못되는 거 같다.
샐러리맨이 된 그는, 매일 야근과 술자리로 늦은 귀가가 일상이며 업무에 대한 강한 욕구로 주말 근무도 자청하는 일쟁이다.

반면 대인관계도 원만했고, 사내 인간관계에서도 탁월했다. 가히 슈퍼 샐러리맨이였다. 

근데 가정은 뒷전인 듯했다.

 

대단한 미인 아내를 둔 마당쇠에 대한 의문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내 예전 직장 사수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