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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1

2학년의 봄
동아리를 둘러보며 가입할 곳을 찾아 다니는 새내기들로 학생회관 전체가 북적거렸다.
동아리에 대한 애정의 깊이만큼 난 책임감을 느꼈다.
나같이 듬직한 선배가 동아리방을 지켜야 여후배들이 많이 오지 않겠는가...

수없이 많은 새내기가 다녀 갔다.
불과 한살 차이 뿐인데도, 2학년과 1학년은 너무 다르다.
그래서 1학년을 freshman이라 하는가 보다.
초등학교6학년보다 중학교1학년이 신선한 이치다.
새내기를 보니 절로 즐거워지는 걸 보면 나도 대학생활 좀 한거 같다.

그네들을 앞에 두고 점잖게 대학생활의 교훈을 들려주자니 벌써 졸업을 앞둔 대선배가 된 기분마저 들었다.

역시 봄의 주연은 개나리가 아니라 진달래다.
도서관 앞 벤치에 혼자 앉아 만발한 진달래꽃을 보며 잡생각을 하고 있었다.

옆 벤치에 누군가 책을 들고 와 앉았다.
낯 익은 여자애였다. 앳된 얼굴이 고왔다.
아무리 동아리방에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어도 신선한 이미지의 이쁜 여학생 얼굴을 잊을리 없다.
우리 동아리에 가입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게 다가갔다.
순수한,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단지 동아리 홍보차원에서 접근했을 뿐이다.

'여긴 왠일이야?'
'네? ...안녕하세요.'


좀 당황하는 듯 했지만 이내 수줍게 인사했다.

'마음은 정했어?'

'...네? ...글쎄요...'

너무 수줍어했다. 역시 새내기다운 풋풋함이 있어 보기 좋았다.

그녀의 눈길이 내 손에 닿았다.
상하지 않게 조심스레 딴 진달래 꽃을 손가락 끝으로 집고 있던 차였다.
꽃을 들고 있던 모습이 민망해서 그냥 그녀에게 건넸다.

'봄이 가기전에 간직해'

너무 과한 멘트가 아닌가 후회했지만, 이미 뱉은 말이였다.
순식간에 느끼남이 되었다.
수줍어 하는 모습에 말 콘트롤이 안됐나보다... 대충 마무리 인사하고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며칠 후
도서관에서 책을 골라서, 대출창구로 갔다.
진달래꽃 그녀가 거기에 앉아 있었다.
요즘은 새내기한테도 이런걸 시키나...

...!!

진달래의 낯이 익은 건 바로, 도서관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진달래는 재학생이였다. 당혹스러웠다.
진달래를 쳐다볼수가 없었다.

'학생증 주시겠어요?'


진달래가 차분한 얼굴로 대출진행을 요구했다.
학생증을 보여 주기 싫었지만, 뒤에 사람도 기다리고 해서 일단 대출받아 나왔다.

벌써 기억력 감퇴가 오나보다. 여자 얼굴이 헛갈릴 정도라니 심각하다.

난 원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할줄 아는 성실한 사람이다.
정중히 사과하기로 했다.
딱히 관심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다. 예의의 문제다.

다음날 오전 대출창구를 보니 안면 있는 애가 앉아 있었다.
그녀에게 진달래의 신상을 물었다.

교육학과, 나보다 한학번 위였다. 거참...
도대체 그 때 왜 인사를 받은 건지. 황당한 진달래였다.
이미 학생증을 봐서 내 나이도 알 터..곤란했다.

아무래도 진달래가 도서관일을 보는 오후 타임은 차라리 피해다니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에 대한 나의 강렬하고 순수한 욕구는 오후시간조차도 도서관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난 단지 책을 사랑할 뿐이다.

시치미 떼고 또 책을 빌렸다.
진달래의 눈이 반짝였다.

'이거 대출해주세요'
'왜 존대말 하세요?'
'아니, 그게... 지난 번에는 실례했습니다. 사람을 잘못봐서...'


괜히 말한 거 같다. 반응이 시원찮다.
대출한 책을 집어들고 돌아서며, 진달래는 다른 말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음료수 한개를 사가서 책상위에 올려놓으면 말했다.

'아르바이트 몇시에 끝나요?'
지난번처럼 자연스럽고 편한 표정을 지어 보일 수 있길 바랬다.

'... ...5시요'


'5시에 문앞에 있을께요'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 나왔다.

안면도 별로 없는 불편한 상대한테 대답을 요구하는 것은 무례다.

내가 원래 매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