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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스타&연예

나는트로트가수다 남진, 담백하게 보여준 트로트의 참맛




트로트판 나는가수다가 추석특집으로 찾아왔습니다. 트로트계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대거 섭외되면서 진작부터 화제가 됐었는데요, 트로트의 대부 남진부터, 젊은 세대까지 아우르는 장윤정, 박현빈까지 트로트계의 샛별과 거성이 한 자리에 모이는 흔치 않은 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최고의 존재감은 단연 남진이었습니다. 그가 왜 트로트의 대부인지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지요.
 
남진, 태진아, 김수희, 설운도, 문희옥, 장윤정, 박현빈으로 이루어진 출연가수들은 노래 선곡을 위해 처음 자리를 함께 했는데요, 제작진이 제시한 후보곡들 중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선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나가수가 돌림판을 통해 선곡하는 것과 달리, 가수들이 후보곡들 중 원하는 노래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무대 준비에 대한 부담을 한결 덜어주었는데요, 남진은 '심수봉의 비나리'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 과정이 재미있었지요. 후배가수 장윤정이 먼저 이 곡을 선택하려고 하자, 크게 헛기침을 하며 노골적으로 눈치를 주어 그녀가 선택을 포기하게 만들었지만, 막상 자신의 차례가 되자, 차마 그 노래를 바로 선택하지 못하고 빙빙 돌면서 다른 곡을 고를 것처럼 행동하더군요. 그렇게 이곡, 저곡의 편곡방식을 들려주며 너스레를 떨고 있을때, 장윤정이 '선배님 안하시면 제가 저곡...'이라고 내뱉자,  냉큼 그 노래를 선택해 버렸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순박하면서도 편안한 노가수같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공연 당일에도, 대기실에서 후배가수들이 인사를 하려 다가오면 벌떡 일어나 반가이 맞아주고 안아주기도 하며, 친근하게 안부를 나누었지요. 그런데 경연순서에 민감한 다른 가수들과 달리, 매니저가 뽑아 온 순위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시종일관 넉넉하고 푸근한 아저씨의 모습으로 여유롭고 느슨한 듯한 인상이었는데요, '긴장되느냐' 묻는 후배와 매니저에겐 입이 바짝 탄다며 떨린다고 털어놨지요. 무게를 잡거나 허세를 부리는 모습은 없고, 넉넉하면서도 진솔한 모습이었습니다.

남진의 앞선 무대는 태진아였습니다. 태진아는 그야말로 혼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마지막 소절을 끝낸 순간, 그는 완전히 기진맥진한 모습이었지요. 개인적으로 태진아의 노래에 크게 감동하진 않았지만 그의 열정만큼은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열창이라면 다른 가수들로서도 신경쓰이는 부분일텐데요, 트로트가수들도 가창력을 폭발시키는 기존 나가수의 공식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무대 직후에 무대로 걸아나오는 남진은 만연에 웃음이 가득한 여유로운 모습이었습니다. 태진아와 완전히 대비됐지요.

남진은 스스로 '45년전 처음 데뷔했을때의 기분'이라고 했는데요, 45년 연륜이 담긴 그의 얼굴에 비친 미소는 한없이 깊어보였습니다. 그도 과연 설레었을까요...

심수봉의 비나리는 조용히 읊조리듯 시작되는 도입부와 특유의 애절한 창법이 돋보이는 노래인데요, 남진의 나직하면서도 여유로운 목소리는 남진만의 잔잔하고 편안한 감성의 흐름을 보여줬습니다. 기타연주와 대화하듯 시작된 그의 노래는, 심수봉이 부른 비나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해주었지요. 심수봉이 애절한 여인의 마음을 노래했다면, 남진은 남자의 사랑을 감성의 기승전결로 풀어냈습니다. 그 어떤 오버나 작위적인 기술없이 온전한 선율 속에서 유연한 감성의 흐름에 마음이 절로 움직였습니다.

나는 트로트가수다에 출연을 결심하며 트로트 가수들은 무언가를 크게 보여주려 마음을 먹은 듯 했습니다. 트로트의 저변확대를 꿈꾸며 트로트와 가곡을 접목시킨 박현빈이나, 가곡과의 조화로운 모습으로 가창력을 폭발한 설운도, 그리고 의외의 도전이라 할 수 있는 장윤정의 네버앤딩스토리와 문희옥의 Nobody 까지.. 이들 참가가수들은, 트로트가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자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세간에 트로트가수는 기교만을 넣을 뿐 노래실력을 평할 게 없다는 편견을 타파하고자, 무언가 크게 한방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습이었지요. 나 이런 노래도 할 줄 안다 또는 이렇게도 부를 수 있다, 시위하는 것도 같았지요. 트로트의 진수를 선보이기 보다는 더 다양하고 폭넓은 시도를 하는 모습이었고, 때로는 트로트보다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기도 했습니다.

오직 남진만이 가장 트로트다운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전혀 고음에 집착하지 않고 구수하며서도 편안한 음역대에서 정서와 감성을 아우르며 온전히 자신만의 무대를 완성시켰지요. 표정과 몸짓 그리고 특유의 음색속에서 노래 속에 담긴 마음을 그대로 담아내는 트로트 본연의 매력을 고스란히 살렸습니다. 그의 노래엔 강약이 있고 편안한 소통이 있었으며, 어쩔 수 없이 우리네 혈관을 흐르는 우리 모두의 정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아는 세대뿐 아니라 그를 처음보는 세대까지 모두가 트로트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통의 나가수에서는 참가자들간에 우열을 가리기 힘든 쟁쟁한 대결이 있어왔지만, 이날 공연만큼은 절대적으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 강렬한 소통이 있었지요. 그의 1위는 필연이었습니다.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남진'다운, 가장 트로트 다운 모습으로 그는 전설의 이유를 설명해준 셈이지요.

그는 이미 얻을것 보단, 잃을 것이 많은 '전설'입니다.
전설은 세상에 나오기가 퍽 부담스럽지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그를 기억하는 그의 세대 속에서 영원히 전설로 기억될 수 있지만,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전설은 현실이 되어 사람들의 품평에 시달리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위험과 두려움을 깨고 무대에 섰습니다. 얻을 것 보다는 잃을 것이 많은 무대였지요. 그리고 그의 이러한 도전 덕분에 우리는 트로트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 나가수에 임하는 상당수 가수들은 뭔가 대단한 것을 보여주고자, 늘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에 최선을 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것을 그대로 보여줬을때 그것이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이 선배가수는 가르쳐주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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