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 2012. 5. 23. 07:00

 

 

한 드라마의 보조출연자가 죽었다. 이 드라마는 거대 방송국을 위해 제작됐지만, 방송국은 제작을 제작자에게 위탁했고, 제작자는 보조출연자의 관리를 하청업자에게 맡겼다. 따라서 보조출연자의 죽음은 하청업자가 감당할 일이다. 하청업자는 유가족에게 톱스타의 드라마 1회 출연료에도 못 미치는 2천만원을 지급했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한 지 한달이 지나 유가족들은 방송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국으로서는 해줄 수 있는 조치가 없다. 계약이 그러하고 시스템이 그러하다. 그저 방송국에겐 애매모호한 '도의적 책임'이 있을뿐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없다.


인간의 여흥을 위해 만들어지는 드라마의 제작 시스템에 인간이 보이질 않는다. 이는 단순히 드라마 제작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사회의 '게임의 법칙'이다.

 

소위 '비즈니스 마인드'가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방송이든, 병원이든, 대중교통이든 모든 분야에 걸쳐 경영합리화가 중요한 이슈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공공분야에 대한 민영화이야기도 곧잘 논의되고 있다. 이런 기업마인드 아래, 인간의 설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요즘이다.

 

이미 회사는 회사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고용된 회사의 사장은 회사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달릴 뿐, 다른 생각은 무가치하다. 당연히 회사의 사원들도 회사의 이러한 흐름에 따를 뿐, 거기에 어떤 개인적인 가치판단이나 사회적 책임감,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없다.


앞서 언급한 사고 유가족들이 방송국 앞에서 시위를 할때, 당신이 방송국 직원이라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가, 방송국에 도의적 책임을 운운하며 보상을 촉구할 수 있겠는가.. 조직의 일원이 된 순간, 개인은 그저 조직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뿐 생각과 가치판단에서 그냥 무력한 존재로 남을 뿐이다.

 

 

기업의 존재이유가 '이윤창출' 혹은 '이익극대화'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상식이고 이 시대를 사는 인간들의 상식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러한 명제에 함몰될때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대형마트와 거대 체인점이 영세 상인들을 내몰아도 이는 그저 게임의 법칙에 따른 것일뿐이며,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향해, 부자들은 '원래 저런 거다'라고 쉽게 납득해 버리는 세상이 되었다.

 

'이윤창출'이라는 당연한 상식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왜 인간인지를 잊게 되는 것 같다. 그 시스템 아래서 오늘도 우리는 시스템에 충실해서 땀 흘려 일하고 있을뿐이다. 그래도 자꾸만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들이 추구하고 있는 지금의 세상이 과연 우리를 위한 것인지, 우리는 점점 스스로의 설자리를 스스로 없애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어제 방송국에 나타난 사고 유가족이 방송국에 요구한 것은 '인간'적인 대우였다. 이것이 당연한 상식이 되는 날이 과연 오게 될까...


Posted by 비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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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난이 2012.05.23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인간의 목숨,,삶의 가치,,,
    인문학적인 가치들은 돈앞에서 한없이 힘없는 헛소리일 뿐이죠
    그 약육강식의 게임의 법칙에서 오늘 하루도 내 자식의 목구멍에 밥넘기기 위해
    거대자본앞에 거대권력앞에 눈에 뜨지 않게 바지런히 움직일 뿐이죠/
    시대가 흘러도 역사가 흘러도 변하지 않네요
    고 노무현대통령이 꿈꾸던 그런 사람사는 세상이 과연 올까요?
    주저리 너무 부정적인 말만 하는 것 같네요

  2. 2012.05.24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아픈 일이군요. 사람의 가치가-심지어 목숨조차도- 돈의 가치로 환산되는 시대인걸까요. 한 사람의 죽음이 부당하게 취급되었다는 증거 역시 유명배우의 출연료와의 비교라는 것이 좀 역설적입니다. 만약 방송사에서 50억원쯤 지급했더라면 정당하게 취급되는 게 되는 걸까요? 물론 현실적인 문제이고 실제로 가장 확 들어오는 지표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외주제작이 늘어날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엎어질지도 모를 드라마라 편성이 확정되어야지나 뭔가 구체적으로 돌아가는데 편성확성은 종종 늦어지니 소위 생방촬영이라는 게 더 기승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회당 방영시간은 슬금슬금 늘어나는데 대중의 반응을 보면서 전개가 진행되어야 하니 미리 사전제작한 드라마들은 낭패를 보기 일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소위 생방촬영이라고 불리는 경우나 방송사고마저 생길 정도로 빡빡하게 제작되는 드라마들이 많아지고 그 속에서 엑스트라는 커녕 소위 스타들마저 안전불감증에 노출되는 것 같아요. 하긴 예전에는 실제로 실탄을 쏘고 폭약을 터트려가며 촬영해서 한번은 수중폭발 지역으로 잘못 보트를 몰다가 정말로 죽을 뻔 했다던 독고영재씨 말을 빌자면 지금은 그나마 안전하게 촬영이 되는건지 모르겠는데 각종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전불감증에 걸린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번 돌아가신 분의 경우도 그런 열악하고 빡빡한 환경 덕에 생긴 사고인지 (즉 인재로서 예방가능했던 사고인지) 아니면 사고 이후 적절한 구호조치가 이루어지기는 했던건지 본문내용만으로는 알 수가 없는데 (원래 위험한 장면은 구급요원을 대기시켜놓고 찍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만약 그런 류의 사고라면 당연히 방송사가 도의적이든 뭐든 책임지고 원인을 규명하고 외주제작사들에게 확고한 지침을 마련하고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어 차후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고 한다고 봅니다. 만일을 위한 보험도 의무적으로 들게 해야하고 말이지요. 또한 돌아가신 분에 대한 사과방송을 하도록 규정해야한다고 봅니다. 시청자들이 놀라겠지만 시청자 눈이 무서워서라도 보다 안전점검을 확실히 하며 찍게 되겠지요. 의무적인 보험 또한 위험할수록 보험료산정이 올라갈테니 그만큼 제작사나 방송사들이 제작환경의 안전성에 대해 신경쓰게 해줄테고요. 환경때문은 아니었고 우발적이고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면 그래도 적절한 조의 표시는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긴 소위 공중파 방영이 되고도 출연료조차 지급하지 않는 제작사들마저 있다니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