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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스타&연예

추적자, 백홍석에겐 지독한 모욕이 된 변명

 

 

드라마 추적자는 강동윤(김상중 분)을 절대악으로 추악하게 몰락시키지 않았습니다. 해외도피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정치엔 실패했지만 인생엔 실패하지 않도록 배려했지요. 그래서 강동윤은 눈물로 잡는 아내에게 '5년 아니 10년 후에 어쩌면 더 오래 있다가 내가 나왔을때도 같은 마음이면 함께 하자'며 편안한 미소로 미래를 기약할 수 있었습니다. 현실이 아닌 드라마다운 결말이었지요.

이렇듯 자신의 죄를 스스로 짊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인간성 회복의 필수 조건입니다. 헌데 법정모독과 살인혐의로 법정에 선 백홍석에게 최정우 변호사는 반칙을 요구했습니다. 백홍석의 진심을 알기에, 그를 진정으로 지켜주기 싶기에, 자신이 믿는 법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결국 최정우 변호사의 변론은 백홍석에게 지독한 모욕이 되고 말았지요.

 

변호인은, 총을 들고 법정으로 향했던 백홍석이 심신상실,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습니다. 17살 딸이 눈앞에서 죽고, 아내는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으며, 자신이 믿었던 법은 딸을 원조교제에 마약을 하는 딸로 만들었기에 백홍석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백홍석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수 없다는 취지의 변론이었습니다.

백홍석은 변호인의 이러한 변명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는 딸을 상실한 충격으로 법정에 난입한 것이 아니라, 딸의 진실을 지켜주기 위해 법정으로 출두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삼십년전 프랑스의 한 철학자는 아내를 목졸라 살해했습니다. 그 직후 그는 정신과 의사에게 전화해서 자신의 정신감정을 받았지요, 덕분에 그는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행위가 한 인간의 숭고한 인권을 지켜낸 것인지, 법의 빈틈을 영리하게 비껴간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남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한 여자의 남편이라는 책임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백홍석은,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 바로 수정이 아빠로서 법 앞에 당당히 서기를 원했습니다. 충격과 슬픔의 광기가 아니라, 딸를 위하는 온전한 아비의 마음으로 선택한 길이라는 거지요. '전 그 때 정상적인 상태였습니다. 머리도 아주 맑고 또렷했습니다. 그러니까 판사님, 심신상실 심신미약 이런거 신경쓰지 마시고요 판결해주십시오. 내가요, 심신상실로 법정에 와서 총을 쐈으면요, 내가 이상한거죠... 법은, 이 세상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내가 이상한 놈이 되는 거잖아요' 이러한 백홍석을 바라보는 변호인과 지인의 표정엔 고통이 배어들었습니다. 동시에 자신들이 백홍석을 아끼는 이유를 새삼 상기하게 되지요. 쉬운 길, 안전한 길을 마다하고 우직하게 살아왔던 백홍석이 아니였다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홍석은 진지하게 법에게 묻습니다.
'판사님 제 죄가 뭔지 알고 싶습니다. 열심히 살았거든요. 남의 것 탐하지도 않고 땀흘린만큼 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수정이 미연이 보내고 내가 그것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판사님 제 죄가 뭔지 거기에 맞는 벌을 받겠습니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도요. 죄는 짓고 벌은 안받을려다가 생긴 일이잖아요. 판사님 저는요 벌받겠습니다. 그리고요 어디서 TV를 봤는데 거기 PK준 부모님 나와서 우시더라구요. 죄송합니다. 전 PK준이 밉지만 그분들께는 소중한 아들인데.. 제가 죽였습니다. 죄송합니다. 벌 받겠습니다'

큰 마차가 먼길을 가다보면 깔려죽을 벌레도 있기 마련이라던 강동윤과 달리, 백홍석은 자신의 확신에 찬 행위에서 빚어진 그 어떤 희생에도 책임을 지고자 합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겠지요.

 

강동윤은 최선을 다한 자만이 포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좌절된 순간, 그는 비로소 모든 욕망과 미련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홍석은 선거결과에 상관없이 스스로 법의 심판을 받고자 했지요. 그래서 선거결과를 지켜본 후에 거취를 결정하자는 황반장의 제안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백홍석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욕망으로 변질된 꿈을 향해 뛰는 사람과 자신의 상식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백홍석의 죄는 퍽 어렵습니다. 원인과 과정이 어떻든 만인의 평화를 위해 법 질서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할지, 권력과 금권에 휘둘리고 숱한 빈틈을 보이는 법의 모순을 인정하고 법의 눈물을 보여줘야 할지..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는 법은 전자에 가깝고, 드라마에게 기대하는 법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백홍석이 원하는 것은 법의 눈물이 아닌, 법의 진실이겠지요. 정말 못난 아빠이고 아무것도 해준게 없는 아빠라며 눈물 짓는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수정이의 얼굴에 묻은 더러운 오명을 씻어주는 것 뿐입니다. 그가 기꺼이 죄를 이고 갈 수 있는 이유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