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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드라마&시트콤

드라마의제왕 김명민, 시청자를 지치게 하는 몰입유발자

 

 

 

 

어떻게 드라마가 이럴수 있을까.. 어마어마한 고난과 역경이 닥쳐서 시청자를 피말리게 하더니, 기적처럼 사태를 해결하고.. 그래서 이제 좀 한숨을 돌릴만 하면 또 다시 예기치 못한 사고가 터지고.. 이런 패턴이 매회 반복되며 열혈시청자마저 지치게 하고 있다.

 

이 드라마를 집필하고 있는, 영화감독 출신 장항준은 드라마의 호흡을 염두해두지 않는 것 같다. 안방의 시청자들은 이런 과도한 스릴을 과연 달가워 할 것인가.. 헌데 여기에 또 다른 복병이 있다. 심각한 문제발생 -> 한방에 문제해결 -> 또다른 문제발생 -> 극적으로 사태해결,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시청자는 면역이 되기 마련이다. 또 다시 엄청한 고난이 들이닥쳐도 이쯤되면 코웃음이 나올 법하다. '어차피 또 해결될텐데..' 하고 심드렁하게 예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런 고난을 겪는 주인공 앤서니 김을 김명민이 연기하고 있다. 너무도 강렬한 캐릭터의 김명민이 거친 호흡을 내쉬고 눈에서 불꽃을 튀기고, 억눌린 목소리로 승부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시청자는 알면서도 또 다시 그의 스릴과 긴장에 몰입되고 만다. 

 

 

숨막히게 뛰어다니고, 톱여배우 앞에서 시크하게 미소를 날리다가도 순박한 작가에겐 든든한 버팀목도 되어주고, 노회한 회장의 협박에 승부욕을 불태우다가도 어린 시절의 슬픈 상처에 눈시울을 붉힌다. 사채업자나 드라마국장 앞에서 무릎 꿇고 애원하다가도 돌아서선 오만하게 세상을 비웃는다.

 

지옥의 일상을 살고 있는 앤서니에겐 인간에 대한 기대 따위는 없었다. 그런 그가 두명의 여인을 맞닥뜨렸다. 그의 프로페셔널한 성품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톱스타 성민아와 그의 냉정함에 질린 듯 하지만 어느새 인간적 신뢰의 가능성을 느끼고 있는 순수작가 이고은(정려원). 어쩌면 성민아는 앤서니에겐 욕망의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앤서니는 성민아 앞에서 추호의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태해결에 보탬이 되라고 그녀가 건넨 거금 5억을 챙기면서도 그는 도시락 한끼 얻어먹는 정도의 고마움만 표할 뿐이다.

 

물론 이고은 앞에서도 빈틈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색깔이 다르다. 백기투항하라는 제국엔터테인먼트 회장(박근형)의 제안에 흔들리는 모습을 이고은에게 들켰을땐 인간적인 외로움이 절절했지만, 그가 드라마 '경성의 아침'을 포기하면 자신도 포기하겠다는 이고은의 마음에 앤서니는 겪어보지 못한 인간의 또 다른 면을 실감하게 된다.

 

 

장대비 속에서 묵묵히 앤서니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던 이고은에게 그가 특유의 오만함으로 말한다. '감기라도 걸리면 대본은 어쩌려구 여기 나와 있어' 차갑게 툭 뇌까리고는 진심을 담아 비장하게 덧붙인다. '싸우기로 했어' 앤서니의 비장한 자기다짐에 이고은이 조심스레 묻는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 이고은의 물음 앞에서 앤서니는 더이상 실패를 모르는 오만한 승부사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는, 외로움을 아는 승부사였다. 지켜주고 싶고 더불어 나누고 싶은 누군가가 생겼기 때문일까.

 

 

늘 혼자 싸웠던 그에게 사람들이 온정을 모았다, 직원들은 월급의 일부를 반환했고 작가는 원고료와 사비를 털었고, 피디는 연출료를 토해냈다. 오직 비지니스의 범주내에서 인간관계를 가졌던 앤서니로서는 퍽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었다. 울컥하는 마음을 감추고자 호통을 치며 '이런다고 내가 고마워할 줄 압니까, 제발 다들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세요'라고 돌아서서는 귀여운 반전눈물을 쏟아내는 앤서니, 격한 고난 앞에선 비장하게, 훈훈한 온정 앞에선 애교스레 연기하는 김명민의 연기에 시청자는 도통 정신이 없다. 이렇게 몰입하다가는 정말 지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