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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n

여보, 블로그 좀 같이 하자니까


이 블로그는 부부가 함께 쓰고 있다.

우선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나'는 남편이다.
한 석달전부터 와이프에게 같이 블로그 좀 해보자고 꼬셨었다. 반응이 시원찮았다. 그런 걸 왜 하냐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맞벌이를 하다보니 부부가 편안히 대화하는 시간도 많지가 않다.

연애시절처럼 함께 취미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늘 반복되는 지리한 일상속에서 너무 건조해진 듯 하다.
 
평소 와이프는 연예인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사실, 해주는 말의 7할은 대충 흘리고 만다. 난 티브이를 거의 안본다. 그러니 관심밖이다.
그럼에도 나머지 3할을 접수했다가 회사가서 직원들에게 이야기해주곤 한다.
덕분에 회사에선 제법 연예계에 밝은 센스쟁이로 통한다.



같이 취미 좀 공유해보자, 블로그 잘만 하면 돈도 벌수 있다더라, 내가 아이들 재운다니까...
와이프한테 글좀 써보라고 닥달을 했다.

내 압박이 버거웠는지 어느날 슬쩍슬쩍 내눈치를 보면서 쓰긴 쓰는거 같은데 뭘 쓰는지 보려고하면 정색을 하며 안보여줬다.
와이프가 자리를 비운 사이, '최근문서' 조회를 통해 와이프가 쓴글을 읽어봤다.
최근 신곡을 발표한 어느 가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평소 와이프의 말에서 느껴지던 감각은 도통 보이질 않았다.
나중에 와이프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난 성격 때문에 블로그 못할 꺼 같아. 미안해, 자기가 본다고 생각하니까 도저히 못쓰겠어, 나중에 자기 몰래 만들게 되면 그때 할께...'
와이프의 첫번째 글은 그렇게 묻혀 버렸다.

어느 일요일, 와이프가 좋아하는 가요프로그램을 함께 봤다. 와이프의 의견에 성심껏 귀를 기울이다 한마디 했다.
'어!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함 써봐!'
이 블로그 최초의 다음뷰 베스트 선정글은 그렇게 우연히 탄생했다.

일요일 밤부터 다음날까지 무려 5000명이 들어왔다. 100명미만의 방문객수에 익숙하던 우리에겐 그야말로 빅뉴스였다.
월요일 퇴근해서 집 현관에 들어서는데 와이프가, 어머니와 아이들의 시선 너머로 므흣한 눈빛을 보내왔다.
그렇게 우리 둘만의 공간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린 연애할때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곤 했다. 게임을 전혀 모르던 와이프를 꼬셔서 베틀넷 1000승을 합작했을때 뿌듯했다.
순하고 내성적인줄만 알았던 와이프의 색다른 모습을 처음 보게된 계기이기도 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못하는거야, 끝까지 집중을 해야지, 집중을..'  그렇게 첨으로 혼나본것이다;;;


요즘 우리 와이프가 드디어 블로그에 삘받았다. 마치 십년전 스타크래프트에 삘받았던 그 열정 그대로다. 감회가 새롭다.
그 시절, 테란과 저그의 전략을 논하고 전술을 펼치듯, 이제는 블로그에 쓸 글들을 함께 논하고 이야기한다. 서로의 글을 읽어보고 의견을 나누며 보완하고 편집한다. 아직 초보 블로거 부부로서 미흡한 점이 많지만 조금씩 실력도 늘고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요즘 부부간에 대화가 넘친다. 부부가 함께 뭔가를 공유하고 나눈다는 것이 참 좋다. 
 
그래서 나도 요즘 예능을 본다. 그동안 난 스포츠나 사회, 일상이야기를 썼고, [entertainment on] 카테고리에 있는 예능과 관련된 글은 모두 와이프가 썼었는데, 나도 최근에 하나 썼다.
첫회부터 꾸준히 보아온 영웅호걸 속 유인나의 매력을 다분히 남성적 시각으로 써봤는데, 베스트 갔다!! 물론 와이프의 폭넓은 배경지식이 뒷받침되긴했지만 나도 예능에 재능이 있나보다. [☞해당글 보기]

우리집에는 컴퓨터 두 대가 나란히 있다. 인터넷 창 하나가 뜨려면 엄청난 인내를 요하는 구닥다리 데스크 탑과 그럭저럭 쓸만한 노트북.
와이프가 본격적으로 블로깅을 하면서 노트북을 접수했다. 난 오늘도 기꺼운 마음으로 인터넷의 '인'자는 [참을 인]임을 새기고 있다
그래도 기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