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봄의 도발


 

친구랑 둘이서 미팅을 갔다. 같은 학교 독어독문과 였다.

상대 여학생 중 한명은 야한 차림에 성깔이 있어 보였고, 다른 이는 선한 인상이였다. 그러나 그다지 호감이 가지는 않았다.
난 선한 인상 맞은 편에 앉았다.

 
제법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고, 노래방을 갔다.
당시엔 일학년이라 술집 생각은 별로 못했고, 오천원이면 넉넉히 놀다 올 수 있었다.

 

이제 헤어져야 하는데, 친구 녀석은 야한차림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초조해 했다. 근데 차마 '에프터'를 할 자신이 없어 보인다.
사실 노래방까지 간것도 이 녀석 때문이였다. 성깔 있어 보이는데 뭐가 좋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친구를 위해 내가 선한 인상한테 말했다.
"내일 저녁이나 같이 먹지.'

선한 인상은 고개만 살짝 숙였다.

'그럼 5시에 학교 정문 앞에서 보자"

역시 분위기다. 친구 녀석도 나름대로 야한 차림의 연락처를 얻어냈다.


다음날 정확히 5시에 정문 앞에 가 섰다.

15분을 기다렸다. 화가 났다.
당시 난 내가 무지 킹카인 줄 알고 있었다. 사실 야한차림이 전날 친구에게 냉담했던 것도 내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을 정도였다.
열심히 달려온 선한 인상한테 다짜고짜 인상을 썼다.

 

커피샾으로 향했다.

친구 때문에 약속을 잡았다지만, 아는 사람 많은 학교 앞이라고, 시선을 의식해서 다소 떨어진채 앞장서 걸었다.
난 인권유린에 익숙했다.
선한 인상도 나의 이런 심각한 결례를 충분히 인식했을 텐데, 별 내색 없이 커피샾에 따라 들어와 앉았다.

 

커피샾 한쪽에 우리 과 녀석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한 놈이 일어나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두 손을 흔들었다.


선한 인상이 내 걱정을 다 해줬다. 곤란해 하며 목소리를 낮쳐 어떡하냐고 했다.


선한 인상은 나라는 인간을 파악했고, 커피샾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며 내게 말했다.
"난 아직 1학년이고 동아리 활동이라든가 과 활동이 많아 당분간 남자 사귀는 것은 보류해야겠어."
다소곳하고 조심스레 말했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네게 아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얘기 듣지 않았겠지, 정말 미안해"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에 올랐다.
영악하고 잔인했드랬다. 품위있는 후퇴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겨울방학이 지나고, 새학기가 되었다.
미팅을 주선했던 동아리 여학우가 우연히 선한 인상 소식을 들려줬다.
"그 애가 지난 방학 동안 뷰티스쿨을 다녀서 몰라볼 정도로 이뻐진거 있지? 독한 맘 먹고 자기 엄마랑 꾸준히 다녔대"
코방귀를 꼈다.

 

눈이 부시도록 화사한 봄날 캠퍼스 더 멀리서 시선을 잡아 끄는 미인이 보였다.

사실 선한인상이 원래 키가 제법 크고, 얼굴도 작고.. 아무튼 근데 참 여성의 변신이 위대했다.

 

속보로 접근했다.

목소리를 깔았다. "오랜만이야, 언제 점심이나 같이 할까?"
여유 있고 차분한 미소에 흰 이가 돋보였다. "나중에~ "


기품이 넘쳤다.

용서 안해주는 구나
휙 돌아서 오는데 꿀꿀한 캠퍼스가 참 넒어 보였다.

 

벌써 십오년 전이다...
갑자기 궁금해 진다. 와이프가 이 글 보면 화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