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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스타&연예

남자의자격, 디지털 시대를 울린 아날로그 감성




가을을 맞아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은 '남자, 시를 쓰다'편을 방영했습니다. 우수어린 트렌치코드를 차려입고 인사동 거리로 나선 이들은 시낭송회를 찾았는데요, 시를 쓰라는 주문에 다시 낯간지러워 하던 멤버들은 이내 저마다의 감성에 젖은 시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덧 시집이 팔리지 않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도서관 한켠에 꼽혀있는 시집들도 사람들의 손때를 타지 못하고 있는 요즘이지요. 그래서인지 남격에서 중년의 남성이 시를 읊는 모습은 낯설기도 하고 어색해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눌한 이들의 음율에는 나름의 인생과 세월이 녹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남자들의 이야기 중 특히 가슴을 울린 것은 '남자와 가족'이었습니다.

이윤석의 시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후회가 담겨 있습니다. 데뷔시절 늘 피곤했던 그는, 아버지와의 대화에 소홀했었습니다. 은퇴한 아버지는 말이 고프고, 퇴근한 아들은 말이 고달펐던 시절, 아버지가 문밖에 서성여도 잠든 척 외면했던 아들은 이제 세월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피곤한 아들이 잠에서 깰까 기척을 내지 않으려했지만, 헐거웠던 어버지의 틀니소리는 한결같았습니다. '뽀그작 빠그작' 아버지는 틀니소리를 추억 속에 남겨두고 영영 떠났습니다. 젊은날에는 깨닫지 못했던 어버지의 마음은, 수없이 반복되는 '뽀그작 빠그작'의 음율 속에 머물고 있지요. 길지 않은 이윤석의 시가 긴 여운을 주는 이유겠지요.

이윤석의 시가 되돌릴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것이라면, 김태원의 시는 모든 걸 바치고 싶은 사랑의 다짐입니다.
김태원은 마음이 아픈 아들을 위한 시를 썼는데요, 이 시는 '친구여..'로 시작됩니다. 아직은 홀로 서지 못하는 아들이지만 언젠가는 동등한 수평적 관계로 삶을 나눌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겠지요.
'나는 너의 잠 속에 꿈이고 싶다. 너의 까만색 동공에 비춰지는 모두이고 싶다. 그래서 시간 속 가슴 시려야 할 모든 조건에 밖이고 싶다'를 읊는 김태원의 목소리는 젖어듭니다. 여전히 혼자만의 꿈을 꾸고 있는 아들과 온전히 만나고 싶은 아버지의 회한이 묻어납니다. 그리곤 간절한 희망을 담아 짧은 시를 마무리합니다. '(중략)...그래서 너의 시선 속에 나는 늘 서성이고 싶다. 저 아름다운 꽃이 자라는 곳에 끝도 없이 너를 던지기 위해..' 세상과 소통하지 않고 있는 아들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은 아비의 바람은 이미 아비의 삶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의 아내가 소원을 말했다고 합니다. 아들보다 하루를 더 살고 싶다고.. 그때 김태원은 다짐을 했다고 하지요, '음악적인 자존심만 내세우면서 살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때부터 김태원은 갑자기 예능을 시작했고, 국민할매로 등극하게 됩니다. 예능 속에서 웃고 있는 김태원은 아들에게 보여줄 즐겁고 유쾌한 세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요.

김태원의 시는 어렵지 않은 일상의 언어로 쓰여있기에 쉬우면서도 깊은 감성을 담아 내고 있습니다. 그의 숱한 명곡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아름다운 노래와는 달리 투박한 목소리로 읽혀졌지요. 하지만 이 투박한 목소리에 담긴 아날로그의 감성이 주는 여운은, 디지털시대를 살고 있는 시청자들이 잊고 있었던 '인간'을 되짚어줍니다. 손안의 스마트폰에서 펼쳐지는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영상과 음향에선 찾아보기 힘든 여백과 깊이가 있지요.

현대인들은 늘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항상 바쁘면서도, 허전함을 떨치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공허함은 그만큼 우리가 많은 것을 놓치고 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를 쓰게 되자, 이윤석은 놓치고 살았던 아버지의 마음을 찾아냈고, 김태원은 다시금 삶의 의지를 다졌습니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쉬이 놓치고 살았던 생의 뒤편을 살필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가을을 맞아 남자의 자격이 건네주는 메세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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