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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변서은 ‘막말’의 상품성을 높여주는 주체

 

방송인 변서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말이 큰 논란을 낳았다. 그녀의 의도는 철도민영화에 대한 반대의사였지만 글 말미에 붙인 그렇게 팔고 싶으면 몸이나 팔아..’란 사족 탓에 후폭풍을 일으키고 말았다. 뒤늦게 그녀는 이 발언에 대해 깊은 사의를 표했지만, 그녀가 생산해낸 막말은 자극을 쫓을 수 밖에 없는 언론에겐 반가운 상품이 되고 말았다.

덕분에 저마다 언론들은 한바탕 히트상품의 향연을 펼칠 수 있었고, 방송인 변서은은 자신의 이름 석자를 예기치 않게(?) 천하에 알릴 수 있었다.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 일부의 반응이다. 인터넷 언론 댓글이나 게시판을 둘러보면 일약 개념녀 등극’’이라는 우호적인 반응들이 상당하다. 물론 속 시원하다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속이 시원해진만큼 어느 한편에선 그 이상으로 속이 불편해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과거 박근혜대통령이 총선에서 면도칼 테러를 당하자 민심은 그에게로 급속히 쏠렸다. 지난 대선에서 이정희 대표가 모욕에 가까운 전투토론을 벌였을때도 어정쩡한 부동층 사이에선 박근혜 동정론이 고개를 들었다. 당시 이정희 대표가 얻은 것은 지지자들의 스트레스 해소만 해줬을뿐, 선거 공학적으로 보면 부동층의 이탈과 혐오감 증대라는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약 민주화운동에 밀려 퇴진 했다면 그는 영원한 독재자로 사람들에게 기억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예기치 못한 총탄에 맞았고 덕분에 산업화의 전설로 등극할 수 있었다.

 

요즘 청와대는 모욕에 민감하다. 초반 특검 논의에 돌파구가 없을땐 귀태 발언을 문제 삼아 물타기를 하더니 박근혜씨라는 호칭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리는 등, 본질과 의미보다는 태도와 말투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기본적인 예의를 상실하면 명분과 의미를 모두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요동치는 국제 정세에서 균형외교로 나라의 안보를 담보해 냈던 광해군은 인목대비에 대한 무례한 행위로 정권붕괴의 빌미를 내주고 안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지금 청와대는 자랑스런 불통에 임하고 있다. 그 핵심은 지지층과 중도-부동층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반대하는 세력은 설득도 회유도 안되는 만큼 중도층의 마음만 잡으면 된다. 중도층은 정의와 명분에 앞서 기본적인 예의에 민감하다.

마침 변서은이 예기치 않게 괜찮은 상품을 던져줬다. 이 상품을 청와대의 입맛에 맞게 이쁘게 포장해 주는 주체는 언론이 아니라, 이런 막말을 찬양하는 일부 네티즌이라고 생각한다.

민영화반대하는 이들은 대통령보고 몸이나 팔라고 하는 무뢰배, 상종 못할 인간들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순간, 민영화의 모순과 문제점은,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고 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