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신의는 고려무사 최영(이민호 분)과 의선 유은수(김희선 분)가 이끌어 가고 있지만, 이에 못지 않게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이야기가 자꾸 시선을 잡아 끌고 있습니다. 이들 이야기의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역사를 관통하는 비극적 이야기의 주인공답게 애달픈 사랑을 예고하고 있지요.
지금껏 공민왕이 노국공주 앞에서 절대적으로 지키고 싶은 것은 자존심이었습니다. 약소국의 왕 공민왕은 대국의 공주 앞에서 언제나 당당한 남자이고 싶지요, 그래서 공민왕은 공주앞에서 여지껏 마음을 열어본 적도, 고민을 털어놓은 적도 없습니다. 차라리 노국공주의 측근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지언정 공주 앞에선 언제나 어깨에 힘주고 당당한 척, 왕의 면모를 갖추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하의 신뢰를 얻고 왕권을 굳건히 하고 싶지만 그 과정을 지켜봐주지 않고 번번히 직접 나서는 공주의 행태를 견딜수가 없습니다.
최영의 역모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노국공주가 직접 구하러 가겠다고 하자 공민왕은 결국 폭발하고 맙니다. '대체 어디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들 참입니까, 내 무능함에 질려서 스스로 무엇을 해보겠다고요?' 그리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공주에게 바짝 다가가 나지막히 속삭이지요, '내가 그렇게 한심합니까? 그자가 그렇게 좋습니까? 그자를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혼인한 이후 가장 지근거리로 다가온 왕이 처음으로 공주에게 고백한 마음은 울분과 질투였습니다. 소국의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공민왕은 대국의 공주가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에 분노했고, 스스로의 자신감이 없기에 공주의 마음마저 의심했습니다.
늘 냉담하게 마음을 닫고 사는 왕 앞에서 마찬가지로 속내를 보이지 않았던 노국공주였지만, 왕이 무너지듯 질투를 토로하자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데요, '전하께는 그자가 나같은 것보다 더 필요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공주의 뜻밖의 대답에 왕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집니다. 어째서냐고 묻는 왕의 얼굴엔 의혹이 가득했지요, '전하는 절대 모르시지만.. 알려고 하지도 않으시지만 저는.. 저는..' 왕의 질투마저 감싸는 노국공주의 이 고백은,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대신들의 소동으로 중단됩니다.
하지만 왕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공주의 마음을 느꼈을 법도 한데요, 그동안 왕은 노국공주 앞에서 당당하고 멋진 왕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헌데 왕이 간과한 것은 노국공주의 마음이었지요,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이유는 남자가 잘났거나 의지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힘을 보태줄 수 있도록 빈틈을 보여주고, 마음을 나눠주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을텐데요, 원나라에서 처음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쳤을때, 상대가 노국공주인것을 모른 채 원나라의 공주와 혼인해야할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던 공민왕에게, 노국공주는 속상한 마음을 숨기고 환하게 웃으며 왕을 위로 했지요, '그래도 상대가 원의 공주라니 도움이 되지 않겠냐'며.. 하지만 첫대면부터 체면을 구긴 왕은 공주의 도움이라는 것자체가 거북했고, 왕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고 싶었던 공주는 그래서 늘 외로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듯 계속 엇나가고 있는 이들의 인연은, 이날 공주의 못다한 고백 속에 또다시 잠기고 마는데요, 후일 왕권을 확립하고 원의 세력을 몰아냈던 명군 공민왕이지만, 노국공주의 죽음 이후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던 슬픈 역사의 눈물이 예정되어 있기에 이들의 인연은 지켜보는 이를 더욱 애달프게 만듭니다. 공주를 잃자 모든 것을 잃었던 공민왕에겐 공주를 아프게 만들었던 이 모든 기억들이 큰 아픔으로 되돌아올테니까요,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짧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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