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공을 지닌 덕성부원군 기철과 뇌공의 최영(이민호 분)이 맞부딪혔습니다. 기철은 왕마저 농락하며 거침없는 반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최영은 상당히 벅차보입니다.
헌데 드라마 신의에서의 최영은 그냥 무장이 아닌가 봅니다. 왕의 지근거리에서 왕의 고뇌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는 측근이자 호위무사이며, 인재를 확보해서 스카웃활동까지 직접 나서며 왕권확립을 위한 계책까지 고려해야 하는, 거의 전권대리인 수준입니다.
왕의 사람을 모으고자 최영은 초야에 묻힌 실력자를 찾아가는데요, 목은 이색선생을 통해 당대 최고의 학자, 익재와도 만나게 되지요, 이미 고려왕실에 대한 믿음을 모두 버렸다는 익재는 최영에게 '어째서 지금 주상이냐'고 묻습니다. 헌데 최영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나약하시어 때로 겁도 내고 결정을 함에 혼란스러워도 하고 저지른 일에 대해 자주 후회도 하지만 그분(공민왕)은 부끄러움을 아는 분이라고 했지요. 그분이 부끄러움에 둔해지기전에 지켜드리고 싶다는 짧은 말에, 자긍심 높고 고지식한 노학자는 전향적으로 최영의 뜻에 수긍해주지요. 다분히 드라마다운 반전이지요, 무공뿐 아니라 학자의 마음마저 꿰뚫는 가공할 최영의 활약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극중에선 기철에게 최영이 밀리는 모습이었는데요, 의선(김희선 분)에게도 '자신이 기철에겐 질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지요.
왕이 인재를 구하자, 기철은 왕이 얻고자 한 이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없애버리고 있습니다. 의선까지 납치한채 왕에게 협박을 날리는 기철의 오만함이 끝이 없는데요, 최영은 겨우 시간을 벌어 의선을 구해내고, 기철의 행패를 간신히 멈추게 했지만 여전히 불리한 상황이지요. 이에 의선은 최영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자 홀로 떠나는 길을 선택했고, 이런 의선의 뒷모습에 최영은 한없는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의선의 모습을 최영은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받아들였는데요, 최영에겐 기철의 막강한 권력만큼이나 의선의 불신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난제였습니다. 또한 익재의 사람들을 기철의 압도적인 폭력으로부터 지켜기로한 약속 역시 버거운 숙제 였지요.
왕의 인재인 익재와 제자를 지켜내고, 왕권도 반석에 올려놔야 하며, 의선도 돌려보내야할 최영은 하지만 의선이 스스로 약속을 없던 것으로 해달라고 하자, 지키지 못했던 과거의 안타까운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공민왕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는 최영의 모습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모습이었지요.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하고 떠났던 길을 돌아 내쳐 달리는 의선, 이미 최영의 계획을 알고 비웃고 있는 기철.. 최영의 모든 버거운 짐의 중심엔 의선과의 러브라인이 뚜렷합니다. 의술과 역사는 이러한 러브라인에 압도당하는 분위기지요.
당초 전문적인 의학드라마를 표방했고, 김희선 역시 직접 의료와 수술에 대한 실습까지 진지하게 준비했지만 결국 러브라인에 집중하도록 시나리오를 변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앞서 방영됐던 닥터진을 의식한 까닭이라는데요, 그러다보니, 전문 의학드라마에 입각했던 김희선의 역할이 '의사'에서 '여성'으로 탈바꿈한 느낌이지요. 덕분에 홀로 역사와 정치를 떠안아야할 최영, 이민호의 역할이 더욱 부담스러워 진 듯합니다. 이는 국사와 사랑을 지켜야할 최영의 또다른 숙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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