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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스타&연예

나는트로트가수다 문주란, 여자가 구현해낸 남자의 호기



지난 한가위특집에 이어 두번째로 선보인 '나는 트로트가수다'는, 나는가수다의 아류라고 폄하할 수 없는 격조높은 무대를 선보이며 트로트의 깊이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이날 무대 중 단연 압권은 문주란의 무대였지요. 45년차 가수의 관록을 보여주며 화려하게 마지막을 장식했는데요, 작년의 첫 회에서도 고음 없이 노래한 남진이 1위를 하더니 이번에도 남진의 노래를 고음없이 부른 문주란이 1위를 차지한 것도 인상적입니다.

이날 도전에 나선 7명의 트로트 가수 중에는, 기존의 자기 이미지를 뛰어넘는 새로운 도전을 한 이도 있었고, 자신이 가장 잘 하는 특유의 매력을 발산한 이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가수는 최진희였는데요, 오랜 세월 사랑받았던 국민 가요 '사랑의 미로'를 히트시켰던 그녀는 부드러우면서도 절절함이 느껴지는 음색이 강점이었지요, 그런데 그녀가 선택한 노래는 '노란 샤쓰의 사나이'였는데요, 가수라면 자신이 잘하는 노래 못지 않게,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도 있을 것입니다. 가슴 먹먹한 노래의 가수로 기억돼온 그녀도, 하고 싶었던 노래가 따로 있었나봅니다. 빨간색의 짧은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그녀는 나름의 안무까지 선보이며 열심으로 무대를 준비했지요, 하지만 긴긴 안무에 신경쓰다보니 가창과 곡의 분위기가 어우러지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의 이미지를 딛고 새롭게 도전한 노가수에게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겠지요.

이에 비해 문주란은 자신만의 강점을 제대로 살린 경우였지요. 60년대 혜성같이 등장해 '허스키의 왕녀' 성재희를 넘어섰던 그녀는 당시 고등학생임에도 독특한 음색과 깊이있는 감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었는데요, 그 관록과 여유 그대로 무대 속에 고스란히 살려내며 열창의 무대를 보여줬습니다

문주란이 선곡한 곡은 남진의 '나야 나'였는데요. 지금까지 슬프고 느린 곡 위주의 곡을 불러왔던지라 빠른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며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리고 무대에 선 문주란은 마치 자신의 인생사를 이야기하듯 관객을 몰입시키는 무대 매너로 관중을 압도했습니다. 원체 이 '나야 나'란 곡은 남자의 호기가 가득한 노래지요. 술 한잔의 풍류와 세상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나는 남자의 호연지기를 담은 이 노래를, 그녀는 특유의 매력적이고 묵직한 중저음으로 개성있게 소화했지요. 강약이 자유로운 그녀의 노래에는 남자보다 멋지게 살아온 여자의 자신만만한 인생이 담겨 있었습니다. 강렬한 첫 소절만으로도 후배가수 싸이먼디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MC장윤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으며, 관객들은 노래 시작부터 이례적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빠르게 리듬을 타면서 가볍게 움직이는 몸놀림은 여유가 묻어 났고 '나야 나'를 외치는 목소리엔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웬만한 남자가수도 보여주기 어려운 남성적인 파워가 있었지요. 고음도 없었고, 감정에 호소하지 않아도 전율을 줄 수 있는 무대였습니다.

이날도 여지 없이 이어진 대단한 가창력의 향연 속에서, 그녀는 홀로 고음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만의 편안한 음역대에서 강약을 조절하고 굵고 가늘기를 자유롭게 오가며 자신만의 여유가 돋보였습니다.

당초 선곡을 위해 한 자리에 모였을 때에도 후배들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고, 자신의 매니저 박휘순을 깍듯이 모시며 오히려 대선배다운 품격을 보여주더니, 노래엔 삶이 들어있다는 것을 차분하게 보여주며 연륜의 깊이를 일깨워줬습니다.
긴긴 생을 홀로 살아온 그녀에게도 남모를 외로움이 있을텐데요, 여자가 표현해낸 남자의 호기는 그녀 스스로에게 보내는 격려이기도 하겠지요.

무대에 임하면서도 경연보다는 시청자분들을 즐겁게 해드리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던 그녀는 무대에 앞서서도 순위보다 관중들이 무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염려가 더 깊어보였지요. 45년이라는 경연 최고참 가수인 그녀지만, 여전히 관중들에게 어떤 무대를 보여줄까에 대한 고민과 염려가 깊은 천상 가수인 그녀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그대로 무대를 통해 고스란히 연륜과 여유과 넘치는 무대로 이어진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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