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소라가 나는가수다에 남겨준 것

                      이소라가 남겨준 것

결국 이소라가 탈락했습니다. 나는가수다(이하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의 이름을 만들었고, 그 이름에 걸맞는 품격을 실어준 '가수' 이소라의 탈락이 아쉽습니다.
나가수 첫 회에서 긴장된 얼굴로 무대에 걸어 나와 '가수 이소랍니다'라는 인삿말을 건넸을때, 이미 나가수는 예능을 뛰어 넘은 느낌이었지요. 그동안 MC라는 부담스러웠을 자리까지 병행해야했던 이소라는 다른 가수보다도 더한 긴장속에서 힘든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함께 했던 가수들이 '자랑스럽다'란 말을 남기고 그녀는 떠나게 됐습니다.

이소라가 이날 경연에서 부른 노래는 '행복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80년대 포크송의 대표주자였던 해바라기의 노래지요. 이소라가 이미 중간평가에서 김범수와 함께 조용히 눈을 맞추고 화음을 맞춰나갔던 그 잔잔함이 이날 무대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원곡이 가지고 있는 느낌을 그대로 살려낸 무대였지요. 바래진 추억 속 잔잔함에 빠져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노래였습니다.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에 실린 감성 속에서 그동안 스쳐 지나쳤을지 모를 일상의 잔잔한 행복이 스며드는 기분이었지요.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감성과 여운을 온전히 건네줄 수 있는 사람, 이소라가 그러했습니다.
이소라가 이 노래 못지 않게 힘을 빼고 불렀던 무대가 있었지요. 바로 송창식의 '사랑이야'였습니다. 이소라는 다른 대부분의 가수가 목숨걸듯 고음을 지를 때도 편안하고 잔잔한 무대를 선보여왔습니다. 이는 지켜보는 동료가수들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지요. 당시 김범수는 이소라의 무대를 보고는 '저건 차라리 용기'라며 찬탄해마지 않았고, 박정현은 이소라가 마음속 1등이라며 '차분하게 했다고 해서 인정을 못받을까 너무 걱정된다'고 했었지요.

이소라는 6이라는 숫자가 친근하다고 여러 차례 말했었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수차례 6위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2등을 차지했던 무대도 있었습니다. 바로 보아의 넘버원을 록으로 편곡한 무대였었지요. 그동안 그녀가 보여줬던 모습이 아닌 전혀 새로운 모습이었고, 시원하게 지르는 창법과 신선한 무대가 청중평가단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높은 순위에 오르는 법을 체험했겠지요. 하지만 이후 이소라는 그 모습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음색과 부드럽고 잔잔함을 보여주는, 바로 '내려놓음'의 무대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있었기에 나가수는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습니다. 항간에는 '나는 가수다'가 아니라 '나는 악쓴다'라는 비아냥마저 들리기도 하는데요, 이처럼 핏대를 세운 고음의 향연들만으로 가득찼다면, 쉬이 피로해졌을 겁니다. 이런 가운데 그녀의 내려놓음이 새삼 시선을 잡아끌고 있습니다. 탈락이라는 어머어마한 부담으로 가수들을 압도하는 나가수에서 이런 이소라의 모습은 다른 가수들에게도 큰 여운을 주었지요. 그리고 동료가수들은 그녀의 탈락을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나가수의 정신을 오롯이 세워줬고, 마음속에서 영원히 1등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요. 아쉬운 탈락이지만, 이 탈락속에서도 이소라가 나가수에 남긴 것을 되새겼으면 합니다.

지금 나가수는 바람 잘 날 없는 나무와도 같이 혼란의 기로에 있습니다. 재도전 논란으로 한달간의 결방이후 재개된 나가수는, 임재범의 합류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었지요. 하지만 옥주현의 합류, 임재범의 하차와 이와 관련된 숱한 풍문들, 그리고 JK김동욱의 자진하차까지....많은 논란과 화제가 이어지면서, 나가수를 뜨거운 애정과 관심으로 지켜봤던 사람들 중 일부는 제작진에 대한 불신도 생겼고, 혹은 염증마저 느끼고 있습니다. 게다가 계속되는 경연으로 인해 피로가 누적된 참가 가수들은 체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몸살을 앓고 있기도 하지요. 짧은 시간 많은 반향을 일으켰던 나가수에도 어두운 그늘이 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운 대목입니다. 이런 와중에 나가수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소라의 탈락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정도지요. 대중적이지 않으면서도 대중에게 어필했던, 뮤지션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었던 그녀의 존재는 최근의 흔들거리는 나가수의 위상을 받쳐주던 버팀목이었기 때문입니다.

자문위원단장 장기호교수는 이번 경연에서의 1등을 김범수와 이소라를 꼽았습니다.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가진 김범수와 나가수의 트렌드를 벗어나 이것도 노래다, 이렇게 부르는 것도 얼마든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소라를 말이지요. 6차례의 경연이 치러지는 동안 나가수에도 트렌드가 생겨났습니다. 화려한 기교 그리고 고음, 폭발하는 가창력과 적재적소에 배치된 감동포인트들이 바로 그것이지요. 상당수의 가수들은 이 트렌드에 맞춘 구성으로 중무장한채 전쟁에 나서는 장수 같았습니다. 그만큼 비장했지요. 하지만, 이소라는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잔뜩 힘을 주었을 때, 잔잔함만으로도 깊은 감동과 여운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청중평가단의 득표를 얻는 법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음악적 자존심을 끝내 지키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지막 무대에 섰던 셈입니다. 그리고 순위가 발표될 때는 이미 탈락을 예감한 듯 다소 상기된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깊은 애정을 쏟았던 프로그램, 노래로 소통했던 동료가수들과의 시간들, 앞서 떠난 동료들의 뒷모습, 그리고 무대에서 청중들과 교감했던 시간들을 되짚는 듯, 한결 깊어진 눈빛으로 탈락자 호명을 기다렸지요. 호명의 직전엔 이미 그녀의 노래와도 같은 내려놓음의 미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탈락이 확정되자 지체없이 일어나 깊은 인사를 건넸습니다. '오늘 너무 좋았습니다, 다들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고맙습니다' 짧게 환한 미소를 비치기도 했던 그녀의 담담한 마지막에, 동료가수들은 그저 침묵할뿐이었지요. 사후 인터뷰로 원년멤버인 김범수, 박정현, 윤도현의 인사말이 있었는데요, 그 중 윤도현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네요, '괜찮으시잖아요. 사실..'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편안하게 보내주는 모습말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나가수에는 순위를 위한 트렌드가 자리잡았습니다. 그럼에도 앞으로 '사랑이야', '행복을 주는 사람'같은 류의 노래는 나가수에서 계속 나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미 나가수의 영광과 긴장의 중심에 서 본 많은 가수들은, 순위보다는 가수로서 해보고 싶은 무대를 해보며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의 의미를 확인했습니다. 언젠가 떠날 수 밖에 없는 서바이벌 경연에서 보여주고 싶은 걸 보여주지 못하고 떠난다면 가수로서 정말 억울할 것이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이어진다면, 청중 평가단의 투표 성향 역시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7위를 생각했는데 6위라서 의외라던 이소라, 어쨌든 그녀는 편안히 떠날 수 있었고, 그녀의 탈락은, 혼란의 위기에 선 나가수에 새로운 긴장감과 숙연함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탈락으로 나가수의 분위기를 일신해준 이소라, 그녀는 당당히 '나는 가수다'라고 말할 수 있을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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