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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스타&연예

김연아, 고소취하도 쇼라는 모욕에 대한 대답

 

결국 김연아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지 못한 채 고소를 취하하기로 했습니다.
김연아의 교생실습을 '쇼'라고 단정했던 황상민 교수는,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나라 제도의 문제점이였다면서 사람들이 본질이 보지 못한다고 개탄했지요, 문제를 지적할때마다 고소를 하면 누가 바른 소리를 할수 있겠냐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비판이라도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비하하고 모욕감을 줬다면, 지적한 사람으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에도 황교수가 보인 태도는 비아냥이었습니다.

그는, 김연아가 (고소를 통해) 인터넷 검색어에 뜨면 더 스타가 되고 몸값이 올라갈 것이라며 고소 자체도 '쇼', 사과하면 고소취하하겠다는 것도 '쇼'라면서 '내게 창피를 주고 인격 살인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지요. 이후 '혹시라도 가슴아팠다면 안됐다'라는 말을 보태기는 했지만 그 태도와 어투에선 진정성을 느끼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소년성공 운운하며 불행한 30대를 보낼 수도 있다는 말이나 부모와의 관계를 언급한 대목은 제3자가 듣기에도 위태로워 보였는데요, 이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지성인의 모습과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한국인이라면 2년전 밴쿠버의 감동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미 모든 것을 이룬 상황에서 또 다시 빙판에 나섰기에 국민들의 기대는 어머어마했습니다. 그 엄청난 중압감을 이겨내고 김연아는 기어이 또 우승을 했었지요, 그 직후에 두손을 불끈 쥔 채 눈물을 흘리는 김연아를 통해, 그녀도 영웅이기에 앞서 소녀였음을 봤습니다.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녀가 홀로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이 얼마나 컸을지를 보여주는 눈물이었지요.

 

돌이켜보면 한국은 그녀를 키워낼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었습니다. 그녀는 한때 일본에서 훈련했고, 본격적으로는 캐나다에 살며 훈련했습니다. 한국은 그녀의 스케이트화도 공급하지 못했지요. 그녀가 세계적인 피겨선수가 될때까지 한국사회가 그다지 도와준 것이 없었습니다. 거의 성공한 후에야 스타대접을 해준 셈이지요. 그런데 그 스타대접은 가혹할 수준이었습니다. 맹목적인 신격화로, 누군가가 그녀를 비방하면 테러수준의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었고, 일부에선 광고를 지나치게 찍는다며 혐오하기도 했지요.

 

그녀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냈고, 피겨불모지인 한국에서 후배들이 더 이상 자신처럼 힘겹게 훈련하지 않도록 피겨인프라 투자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헌데 많은 사람들은 논란이 생길때마다 편을 갈라 서로를 상처주고 김연아를 상처줬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제도에 따라 교생실습을 나오니, 한 교수는 우리 사회 문제를 심리 분석하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라며 그녀를 활용(?)하기도 했지요.

 

지금은 그나마 조금 잠잠해졌지만 여전히 그녀에 대한 관심은 지대합니다. 불행한 30대를 운운했던 황교수의 말이 아니라도, 그녀가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아보입니다. 그녀의 공개적인 활동은 모두 언론에 공개될 수 밖에 없으니, 그녀의 삶 자체가 전시되고 있는 셈인데요, 결국 그녀의 교생실습도, 그녀의 고소도 그녀의 고소취하도 '쇼'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교생실습을 앞두고 '사범대 4학년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인데 관심을 받게 돼 부담스럽다'던 그녀는 사범대 4학년의 삶을 누리기에도 벅차보입니다. 그녀가 황교수에게 바랐던 것은 진정성 있는 사과였지만, 결국 그 요구를 철회해야 했습니다. 어느 하나,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릴 수 있는 것을 그녀는 누릴 수가 없지요, 그리고 그녀는 그 현실을 또다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고소취하도 '쇼'라는 모욕 앞에서 그냥 고소취하를 했으니까요..


그녀가 한국에서 행복할 수 있을지, 피겨선수 김연아가 아닌, 인간 김연아의 미래가 한국에 있을지 퍽 의심스러운 대목입니다. 우리는 그녀를 평범한 사람들과 차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김연아를 죽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관심 있기때문에, 혹은 사랑하거나 미워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