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ntertainment On/드라마&시트콤

청담동앨리스, 로맨스보다 토론에 열중하는 독특한 커플

 

 

 

 

극 초반 명랑코믹의 분위기를 보여줬던 청담동앨리스가 중반 이후부터 내내 진중한 철학의 세계에 푹 잠겨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속이고 접근했지만, 끝내 서로의 진심을 깨닫고 행복하게 살았다' 식이라면 한결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을 법하지만 결국 식상한 전개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두 남녀가 사랑 못지 않게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습니다.

 

 

'청담동이 뭐라고.. 그냥 내가 사는 곳일뿐인데...'
차승조(박시후)의 독백처럼 그는 사랑을 믿지 못해 괴로울지언정, 세상을 믿지 못해 고통받는 한세경(문근영)의 절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청담동에 들어오기 위해 자신과의 인연을 시작했다는 한세경의 말을 차승조는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은 세상이 잘못된 탓'이라는 한세경의 진심이 그다지 차승조에게 어필할 수가 없었지요.

 

 

모든 것을 잃어 힘들었던 상황을 오직 자신만의 힘으로 극복해낸 경험이 있다고 믿는 차승조는, 그래서 자신의 절망을 세상탓으로 돌리는 한세경에게 실망했습니다. 힘들었던 파리시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그림을 그렸고, 어느 익명의 독지가가 거금을 주고 이 그림을 사줬다는 것은 개인의 꿈과 희망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분명한 증거였지요. 바로 차승조와 그의 동네 친구 허동욱(박광현)에게만 유효한 증거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접한 다른 동네 출신의 사람들은 단번에 그 익명의 독지가를 머리 속에 떠올릴수가 있었습니다. 타미홍, 문비서, 서윤주, 한세경.. 이들에게 세상은 절대 우호적이지 않았고 이들은 잘나가는 재벌 아버지를 가져본 적도 없었지요. 그래서 이들은 낭만적인 독지가의 선의보다는 재벌가의 행운을 직시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차승조는 옛연인의 선의가 아니였을까 의심할지언정 그 독지가가 아버지일줄은 전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이제 차승조가 한세경을 받아들이기 위해 중요한 이슈는 '진심' 대신 '세상에 대한 직시'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청담동에 살고 있는 차승조는, 청담동에 어울리는 마인드로 변신하는 한세경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청담동 밖에서 살아온 한세경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것이지요.


사랑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합니다. 냉담한 차승조 앞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한세경도, 자신의 세상에 대한 절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차승조 앞에서 낙담할 수 밖에 없었지요.
이런 차승조에게 서윤주가 냉정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그걸 몰랐냐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 독지가의 정체는 아버지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해주지요.
당초 차승조는 한세경에게 찌질한 자신의 성품을 고백하며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집이 되어달라고도 했지요. 하지만 사랑은 일방적일 수 없나봅니다. 또 결혼은 사랑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이제 마지막회를 남겨두고 있는 이 드라마에선, 두 사람의 로맨스를 부각하는 대신 두 사람이 서로의 현실과 가치, 생각을 온전히 나누고 이해하는 과정을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달달한 로맨스 대신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철학이 필요했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