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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예능&오락

정글의법칙, 조작논란에 대한 대답은 '실패와 좌절'

 

 

 

 

요 며칠동안 정글의 법칙에 대한 조작논란이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박보영의 소속사 대표가 자신의 SNS에 남긴 말에서 비롯된 이번 논란은 방송국의 발빠르고 적극적인 대응과 당사자의 해명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정글의 법칙이 가진 '리얼 야생버라이어티'란 이미지에 어쩔 수 없는 상처를 줬다.

그리고 이 논란이후 방송된 정글의 법칙 아마존편 마지막회에선 이번 연출논란에 대한 정글의법칙 나름의 대답이 담겨 있는 듯하다.


어제 방송에서 병만족은 와오라니 부족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야생돼지 사냥에 나섰다. 부족민들은 새벽부터 사냥성공을 기원하는 의식을 펼쳤고, 병만족은 이들 부족민들과 함께 4시간에 걸쳐 아마존의 밀림을 누볐다. 하지만 돼지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이날 방송은 조작논란이 있기 훨씬 전에 촬영된 분량이다. 적어도 이들이 이런 허무한 내용을 의도하거나 연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4시간동안 밀림을 누빈 병만족에게 남겨진 것은 단지 돼지의 발자국과 돼지냄새만은 아닐 것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늪길, 우글거리는 독충, 끈적끈적한 열대의 공기, 올라서면 절로 다리가 후들거리는 외나무다리.. 이들은 정글의 현장에서 사냥의 과정을 수행했다. 끝내 돼지를 만나지도 못한 채 사냥은 실패로 마무리되었지만, 그 과정은 병만족 개개인에게 각자의 의미로 남겨졌다. 혹자에겐 그저 사냥 실패 자체로 남겨졌고, 혹자는 짜증나는 불쾌한 기억으로, 혹자에겐 삶의 색다른 추억으로, 혹자에겐 숨막히는 긴장의 기억으로 말이다. 지켜보는 시청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이조차도 연출이라는 비아냥부터 병만족의 난관과 좌절에 몰입해서 긴장을 느끼는 사람까지 반응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사냥에 실패한 병만족장은 마을로 돌아와 대신 자신이 현재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는 부족의 아이들을 위해 그네를 만들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지 밤늦도록 강가에서 물고기 낚시에 매진했다. 장시간 애를 썼지만 역시나 실패, 단 한마리의 물고기도 낚지 못했다.

 

하지만 물고기를 낚았든 낚지 못했든, 돼지를 잡든 잡지 못했든 그는 정글의 법칙이라는 예능의 테두리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했고,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방송의 분량으로 남겨졌다.

우리네 삶의 과정 역시 성공을 담보로 할 수 없다.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그러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 그 과정에서 혹자는 반복되는 실패에 좌절하거나 혹은  삶의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내기도 하듯 말이다.

 

 

미르는, 정글이란 몸보다 마음이 힘든 곳이라고 푸념했다. 정글에서 너무도 무력하기만 한 자신에 대한 자책이 그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의 이러한 속내를 느낀 박정철은 미르가 자신의 심정을 동료들에게 솔직히 털어놓도록 유도했다. 미르가 속마음을 펼쳐보이자 박솔미가 그의 좌절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줬다. 그 순간 병만족에서 홀로 외떨어졌던 미르는 다시금 병만족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모든 멤버들이 더불어 병만족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며, 정글의 법칙이 감동을 주는 방식은, 힘겨운 정글을 극복해 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힘겨운 정글에서 더불어 공존하는 과정에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문득 실패나 성공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는 식상한 명제가 갑자기 무겁게 다가온다.

 

조작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던 정글의 법칙, 이 방송을 위한 변명은, 제작진이 언론을 통한 해명보다는 이렇듯 방송 그 자체로 보여주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