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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드라마&시트콤

그겨울 바람이 분다, 진한 몰입 이끌어낸 두 주연의 치열한 감정선

 

이 드라마는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가 화면 전체를 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들이 첨예하여 충돌하고 있지요. 이들은 예외없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솜사탕의 추억, 함께 했던 강변을 공유하며 오영(송혜교)는 오수(조인성)에게서 진짜 오빠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빠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밤새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겨울바다를 구경하며 무척이나 행복했었지요. 오빠와 함께 누워 눈이 아닌 손으로 기억해 가며 오빠와의 거리를 좁혀 갔습니다. 주변에 선을 긋고 살던 오영은 오수에게 눈이 보이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섣불리 짐작하고 믿을 수 없다고도 고백했지요.

 

 

오영은 신뢰의 행복을 누려보지 못했습니다. 가장 지척에서 손발이 되어주고 있지만 철저한 불신속에서 동거하고 있는 왕비서, 아버지가 정해준 정혼자지만 전혀 관심없는 이명호본부장, 친구라 여겼지만 일거수 일투족을 왕비서에게 보고하고 있는 친구 미라까지...오영에게 세상은 퍽 친절하지 않지요.

 

그런 오영이기에 오수가 진짜 오빠라고 믿게 된 순간, 오수라는 존재는 절대적이 되었습니다. 오빠와 함께 눕자 그토록 가혹했던 불면증도 멀리 달아나버렸습니다. 이제는 오빠 오수와 함께 하는 일상이 너무도 자연스럽지요. 그래서 잘해주던 오빠가 갑자기 화를 내도 원망하거나 상처 받는 대신 오히려 오수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오빠라는 신세계가 갑작스레 무너져버렸지요. 문희선(정은지)이 찾아와 오빠 오수는 사기꾼에 도박꾼이라며 그녀에게 접근한 것도 돈 때문이라고 말했을때 오영의 신세계는 부서졌습니다. 거짓으로 가득찬 자신의 세상에서 어렵사리 마음을 열었고 그래서 온 마음을 주었던 오빠인데, 그 역시 여태까지의 세상과 다를 바 없음을 알았지요.

 

방황하던 오영은 정혼자를 불러내 데이트를 하고 술을 마시다 오빠 오수를 부릅니다. 자신을 죽이러 오라며 말이지요.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오영은 오수에게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여러가지 방안을 덤덤히 내놓지요. 이런 오영에게, 오수는 자신이 돈을 노렸다면 애초에 죽일 기회가 너무 많았다며 자신의 진심을 강변합니다. 오수의 목소리에 배인 절절함을 느꼈을때, 오영은 차갑고 담담하게 자신을 죽이라 말했던 냉정한 상속녀에서 어떻게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픈 약하디 약한 오수 동생 오영으로 돌아와 있었지요. 어쩌면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널 믿어도 된다고... 해줘. 난 내 옆에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어, 제발 오빠 너만은 내가 믿어도 된다고'라며 오열하는 오영에게선 지금껏 외롭고 고단했던 삶의 애잔함이 그대로 묻어나왔지요.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무도 없는 그녀의 삶은 외로움과 거짓과의 처절한 싸움일텐데요, 재벌 상속녀지만, 주위에 믿을 사람 하나 없이 살아온 고독한 오영의 삶에 전혀 새로운 행복의 경험을 줬던 오수와의 경험을 결코 놓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미칠 듯이 조여오는 불신의 늪을 헤치고 이렇게 애원해서라도 다시금 믿고 싶어하는 마음이 애달팠지요.

 

 

이런 그녀의 오열에 그녀를 속여야만 하는 사기꾼이며 자신을 믿으라고 떳떳이 수도 없이 내뱉었을 오수는 어렵게 어렵게 그녀의 요구에 부응합니다.

'난 믿어도 돼' 거짓말을 밥먹듯 하고 살아온 사기꾼 오수에게 거짓말이 어려워진 순간, 오수는 자신의 진심을 느꼈을까요, 거짓말이 너무도 힘겨워진 사기꾼 오수의 앞날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치열한 감정선을 유지하고 있는 송혜교, 조인성 두 주연의 열연이 극의 몰입을 극대화 시키고 있습니다.


처절하게 오열하는 오영 앞에서 떳떳할 수 없는 오수의 불안한 눈동자가 여운을 주는데요, 사기꾼이 가장 많이 가장 쉽게 내뱉는 말이 '날 믿으라' 건만, 사기꾼 오수에겐 이미 너무도 벅찬 말이 되어 버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