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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예능&오락

[무한도전] 길, 왜 아직도 존재감이 안생기는 걸까

 
길이가 무한도전에 합류한지도 어느덧 일년여를 헤아리고 있다.

점잖고 반듯한 유반장의 부드러운 리드 아래, 삐딱하거나 엉뚱하거나 익살맞은 제각각의 케릭터들이 캐쥬얼하게 어울리던 무한도전이였는데, 순하고 성실한 길이의 합류는 신선한 면이 있었다. 늘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온 유재석을 본받아, 길이도 초반엔 열심히 했다.

근데 여전히 길이는 무한도전에서 이방인이라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다. 또 처음과 달리 소극적인 모습도 보인다. 왜그럴까..


일단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헌팅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한 남자가 어느 여자에게 다가가서...
'잠시 이야기좀 할까요?' 이거랑, '저.. 잠시 이야기 좀 할까요? 네?' 요거랑 그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아주 당연한 듯 자연스럽고 당당히 말을 한다면 상대방은, 얼결에 그래야만 하는 줄 착각할 수도 있다.
근데 상대가 의사결정자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시켜주며 (한마디로 눈치보며) 조심스레 자신없이 이야기하게 되면 어떤 상대가 내켜하겠는가.

무한도전에서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길이의 모습이 후자와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멤버들은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서 여러 아이디어와 의견을 내고 있다. 유독 길이는 자신의 의견에 자신이 없다.
'저.. 우리 해운대에서 모이면 어때요?' '(명수)야야 거길 어떻게 가' '(준하)차라리 광안리를 가자고 해' '네, 광안리로가요' '(명수)난 못가'
박명수 같은 삐딱 컨셉의 케릭터 앞에선 그야말로 깨갱이다.

 
'에.. 지금까지의 상황은 우리가...' '(도니)뭘 굳이 그걸 정리하고 있어', '(재석)그래, 시청자분께서 뻔히 다 보고 계시는데..''그래도 이렇게 한번씩...''(재석)그래 한번 정리해라'
사려깊은 유재석이 챙겨주는 모습마저 이젠 안쓰럽다.

그가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잡을 수 있으려면 무한도전의 오랜 멤버들과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가정을 하나 더 해보자.
돈없고 빽없는 내가, 집안 빵빵하고 돈 많은 친구와 너무도 어울리고 싶은 경우가 있다.
이 친구와 진정 사귀려면, 아니 진실까진 아니라도 자연스러운 수준의 친분을 나누려면 어찌해야 할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그 친구의 배경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친구의 집안과 재산이 자꾸 의식된다면 친구가 될 수 없다. 친구란 동등한 눈높이로 바라볼수 있어야 한다.
그가 나를 친구로 받아줄까 걱정하고, 그가 나를 왕따 시킬까 두려워 하면서 우정을 기대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당한 자신의 모습을 확신했으면 좋겠다.


예능은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근데 자기확신이 담겨있지 않은 멘트와 개그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즐거움을 주기 어렵다.

사실 예능에서 눈치보기는 흔한 일이기도 하다. 왕년에 엑스맨에선 막강한 MC가 최강의 아이돌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고 해당 팬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눈치보는 것도 현실감 있는 위트가 될법도 하다.
한편 초기의 1박2일에서도 막 자리를 잡지 못한 이수근씨가 강호동의 눈치를 보는 듯, 은근히 기죽은 모습을 보여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길이는 성공한 가수다. 그 분야에서의 성취는 인정받고 있다. 나 역시 리쌍의 노래를 아주아주 좋아한다.
근데 예능에서 길이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거 같아 안타깝다.
몇주전 방영된 무한도전 아이돌 스페셜에서, 길이는 SM에서 오디션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도 그는 성공한 가수로서의 면모는 그닥 눈에 띄지 않았고, 미완의 예능인 모습만 있었던거 같다.
(물론 예능에서 굳이 가수티 낼 필요는 없어도 되겠지만,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의 자존심도 좀..)



요즘 모습이라면 그의 연인 박정아도 가슴 아플 것같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지루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음악에서 성공한 길이, 이왕 들어온 예능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만들어갈수 있길 바란다. 그러려면 우선 자기확신이 필요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