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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아직도 남아있는 식민사관, 간접적인것도 많다




 
외국계 회사에 재직 중이다 보니 본사에서 출장 온 사람들과 가끔 회식을 하게 된다.

본사에서 우리부서를 관할하는 사람은 영국인인데, 특이하게 역사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와 대화를 하자면 역사이야기를 많이 하게된다. 물론 그가 주로 이야기하고 우린 듣는 편이다.

한번은 동남아의 근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잠시 점령당했을 뿐, 피 식민지의 경험이 없다는 태국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한국인 동료가 한마디했다.
'태국이 식민지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완충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난 동료의 말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중학교때 배운 내용으로, 문제로 출제되더라고 명확하게 적어야 할 [정답]이였다.
인도차이나반도를 지배한 프랑스와 말레이반도쪽의 영국은 서로의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태국을 남겨놨다는 평가다.
우리의 제도권 교육은 완충국이라는 정답을 요구했다.

근데 그 영국인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태국인들이 스스로 시장을 개방하여 능동적으로 교역을 했고, 현명한 외교를 펼친 결과로 봐야 한다.'

물론 이런 견해 역시 그의 편견일 수 있다. 하지만 난 뒷통수 맞은 기분이였다.

 과학 :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넓은 뜻으로는 학(學)을 이르고, 좁은 뜻으로는 자연 과학을 이른다
          (백과사전 검색결과)

역사학이든 지리학이든 물리학이든... 우리는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집성한 [과학]이란 것을 서구에서 들여왔다.
근데 그 대부분이 일본을 통해서 였다.
그렇기에 우리가 배우고 알고 있는 학문의 상당부분엔 일본인의 인식이 묻어있을 수 밖에 없다.

완충국이란 개념에는 피식민지 국가의 의지가 없다. 그냥 외부인들이 '쟤들은 냅두자' 라는 느낌이 강하다.

과연 태국인들은 자신의 의지나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제국주의 시절, 서구열강은 지구 곳곳에서 충돌했다. 아프리카, 인도, 중국, 아메리카, 중동 등등  그 어디에 또다른 완충국이 있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근데 왜 완충국이란 말이 나왔을까.
일본인들은 아시아를 지배하고 싶었다. 피지배자들에게 자주의식을 허용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아시아인들에게 피동적 역사인식을 심어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에 어김없이 등장했던 말이 있었다.
'한국인은 이래서 안돼, 맨날 지들끼리 당파싸움이나 하고..
'  그래도 요즘은 많이 잦아들고 있는 추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직접적인 식민사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당연한 듯 접하는 수많은 학문에도 알게 모르게 일본인들의 시각이 녹아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니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학교 다닐때까지만 해도, 왠만한 주요 고전은 직접 번역해내지 못하고 일본어번역문을 다시 번역한 것이 대부분이였다. 요즘에는 우리의 연구활동도 활발해져서 직접 해당나라의 언어를 번역는 일도 늘어나고 있기는 하다.

2004년에 스페인 문학의 정수라 할수 있는 돈키호테를 우리말로 직역했다는 기사를 접한 바 있다. 당시에는 직역의 의미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못했다. 우리번역문학의 현주소가 아직 미약하다는 평가에 막연히 고개만 끄덕였을뿐이다. 하지만 그 의미가 새삼스러워진다.
또 직역을 한다하더라도 번역하는 사람의 상식과 기본인식에는 아직도 이런 일본의 영향이 알게 모르게 깊이 남아있을수도 있을것이다.

일본어를 거친다는 것도 분명 짚어봐야 할 일이지만, 우리의 인식을 되돌아보는 것도 중요한 일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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