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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은 호수에 젖고 #4


눈빛에는 마음이 담겨 있다  때로 눈빛을 통해, 말로 듣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 받기도 한다.
*

[사랑]이라는 단어, 참 말하기 힘든 단어다.
오해의 소지도 다분하고, 일상에선 익숙치 않은 단어다
.
말을 하려니 자꾸 망설여졌다. 곤란했다
.
 

'우리 노래 마음에 드냐?'
'
'
'
연주를 제대로 하려면 노래에 담긴 마음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야 돼.  이 얼마나 고운 노래냐, 이에 맞게 고운 음색을 낼 수 있어야지.'

복순이의 진지한 시선이 부담이 됐다.
그 시선을 외면하며 힘들게 말을 이었다.

 

'정말로 사랑한다는 마음.. 흠흠....제목이 우리가 어느별에서잖아,

 서로를 사랑한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별나라를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고백하듯이 말이야. 그렇게…'

 

약간 인상을 쓰며 아주 빠르게 후다닥 말해버렸다.
얼굴이 빨개지는 기분이다,

 

'나 잘 할 수 있을 꺼 같아요'
복순이의 대답에 더욱 민망해졌다.

 

감성에 젖어 보려했다. 사랑의 마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현중의 파트너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사뿐사뿐 걸어오더니 현중이한테 음료수를 건넨다. 게다가 기품있는 미소까지 덤으로 보냈다
.
부러웠다
.
나도 모르게 복순이를 쳐다봤다
.
음료수를 사러 갔다. 복순이한테 건네며 미소도 만들어 보였다
.
노력하기로 했다.

 

군대에서 휴가나온 동기녀석이 우리 연습하는 곳에 와서 자꾸 복순이에게 농담을 건넸다.
녀석의 마음이 짐작됐다
.
분명 우리 옆에서 연습하고 있는 현중의 파트너에게 관심이 있을 거다
.
차마 그녀에게 바로 가지는 못하고 근처에 있는 복순이한테 워밍업만 하고 있었다
.
복순이가 참 만만해 보이나 보다.

 

여유있게 웃고 있는 녀석의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
'
야 방해말고 저리가라. 현중이랑 놀아!'

녀석이 당황하다가 이내 현중이네 쪽으로 향했다.

그 몸짓엔 긴장감이 뚜렸하게 드러났다.

녀석은 현중이의 파트너는 쳐다도 못보고, 현중이에게 엄한 군대뉴스를 읊어댔다.
영 대책 안서는 녀석이다. 도무지 자연스럽지가 않다
.
 

외모를 따지고 상대를 따지는 것은 나도 다를바 없었다
이젠 자연스러울 수 있길 바랬다.

 

학생회관 뒤뜰엔 몇몇 가로등만이 있어 대체로 어두웠다.
어둑한 조명아래 열심을 하다는 복순이의 얼굴이 문득 귀엽게 보였다
.
만감이 교차했다
.
자꾸 보면 정이 드는 거 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새삼 느껴졌다.

연주를 하다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못느꼈지만, 복순이의 음색은 이미 충분히 고왔다
.
 
복순이의 마음을 느끼며 내 마음도 선율에 보탤 수 있었다
.
마음을 느끼고 공유한다는 거... 참 괜찮은 거 같다.

 

주변엔 제각각의 연주소리가 어지러이 뒤섞이고 있었지만, 어두운 가을하늘엔 우리만의 선율이 확연히 그려지고 있는 듯 했다
그럭저럭 당김음도 소화가 될 듯 싶었다
.
*
공연 전날, 막 설치된 수상무대에서 최종 리허설이 있었다
.
여학우들의 옷차림에 깜짝 놀랬다
.
다들 한껏 차려입고 생애에 남을 추억을 준비하나 보다
.
화장품이 왜 비싼지도 알게됐다

 

늘 미리 와 있던 복순이가 보이지 않았다.
다들 무대를 살펴보고 이것저것 분주히 점검을 하고 있는데, 복순이의 모습이 보이자 않자 신경이 쓰였다
.
짜증 같기도 하고 걱정 같기도 하고 초조함 같기도 했다.

 

복순이가 진한 화장에 검은 원피스 정장을 하고 나타났다.
!!!

바라보는 내 눈길이 이상했나 보다.
복순이가 어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
'
할머니가 잘 하라고 사주셨어요'

 

왜 하필 할머니인가...
이상하게 할머니라는 단어가 뭉클했다
.
그러고 보면 난 복순이의 신상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다
.
마음의 부채가 또 쌓였다
.
 

다시 봐도 쬐금 이쁜거 같긴 했다. 내 시각은 상당히 객관적인 줄 알았다.
아무튼 화장이 잘 받아서 다행이다.

 

동아리사람들이 복순이에게 미모를 운운하며, 마구 마구 찬사를 날렸다.
이쁜게 맞는 거 같았다
.
문득 마주친 복순이의 눈빛이
생소했다
 

동기녀석하나가 손을 뻗어 복순이의 어깨를 만졌다.
'
~ 정말 옷이 날갠데? 나 못 알아봤어'

난 그 손을 거칠게 쳤다.
'
비켜, 연습해야 돼
'
내 손길과 목소리에 혹, 분노가 섞였었나 잠깐 고민했었다.

 

현중이의 파트너가 복순이를 천천히 흝어봤다.
'
복순이 많이 예뻐졌네. 내일 공연 전에 나한테 와, 내가 화장 봐줄께'

 

저 넉넉한 여유.

난 그녀의 눈빛에 담긴 마음을 봤다.
그녀의 저 호의는, 분명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평가된 여자에게만 허락될 것이다
.
갑자기 외로운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늘 화려하기만 했던 그녀의 자태에서 초라함이 느껴졌다.
약간 쳐진 복순이의 팬플릇을 힘껏 치켜들어줬다
.
'
자 시작하자'

 

역시 복순이의 눈빛이 달라진거 같다.
연주를 하면서도 난 복순이의 눈빛을 생각했다
.
복순이의 낭낭한 팬플릇 음색을 듣다 문득 깨달았다.

복순이의 눈빛엔 언제나 위축된 듯한 마음이 들어 있었다.
근데 지금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 따라 유달리 이뻐보이는 것은 단지 화장과 옷차림 때문만은 아닐지 모르겠다.

우리의 리허설 차례다.
무대에 들어서며 복순이에게 말했다.

 

'우리 아주 잘 한 거 같은데? 자신있게 하자.  

 . 내가 말했었나너 이쁘다고.'

 

복순이가 내 말을 당당한 눈빛으로 받아내는 것이 낯설었다.

 

이러다 정말 이뻐질까 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