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의 액받이무녀로 강녕전 침소를 지키게 된 월(한가인)은, 내의원에서 올린 차(수면제)를 삼키지 않고 밤을 기다렸던 훤에게 그 존재를 들키게 됩니다. 하필 그 순간 월은 왕의 옥체에 막 손을 댄 찰나였습니다. 옥체를 범한 건 대역죄로서 그녀는 어마어마한 죄값을 치뤄야 했는데요, 일단 밀실에 갇혀 물 한모금 먹지 못하는 죄인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월은, 왕이 잠결에 되뇌였던 이름 '연우'가 자꾸만 거슬립니다. 연우라는 그 이름을 통해 한겹한겹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은 월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지요. 이후 훤을 마주대하는 순간에도, 나중에 저잣거리에서 양명과 우연히 조우했을 때에도, 두 남자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는 월의 봉인됐던 기억들을 한풀한풀 되살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여전히 월은 이러한 기억조각들은 무녀로서의 신기로 치부하려고 애쓰는데요.
월이 밀실에 갇혀 정체 모를 꿈을 꾸고 있던 시각, 연우의 어머니 신씨또한 자신을 찾아온 딸 연우를 꿈 속에서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어린 딸을 만난 신씨는 연우의 손을 잡고 춥진 않았는지 외롭진 않았는지 애달파합니다. 하지만 어린 연우는 미소를 지을 따름이지요. '내내 강녕하세요'라는 한마디를 남기는 딸을 보며 어머니 신씨는 아쉬워 잠을 깨고 말지요. 그 시각, 연우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는 다른 사람이 있었으니 그녀의 오라비인 허염인데요, 그 역시 별당으로 걸음을 옮기다 누이와의 오래전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연우의 죽음과 관련된 또 다른 인물 중전 보경도 꿈 속에서 연우를 만나는데요, 하지만 중전에게는 거북스럽고 불안한 꿈이었지요.
이렇듯 월과 주변사람들은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가 담긴 과거와 조우해야만 했고, 그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월이나 기억하고 있는 주변사람이나 여전히 과거 속을 헤매야 했습니다. 그리고 시청자들 역시 연이어 등장하는 과거에 대해 아쉬울 법하지요. 일명 '아역의 저주'가 짙어지는 형국입니다.
궁으로 돌아온 월로 인해 주변들까지 스스로 자각하지도 못한채, 연우와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연우가 죽은 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과거가 모조리 밝혀지는 극의 종반부까지, 연우의 죽음을 둘러싼 이러한 과거의 망령은 꾸준히 계속될 텐데요, 주변인들의 기억 속 연우는, 연우의 마지막 모습인 아역을 떠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원작과 달리 자신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 연우 역시, 새록 새록 떠오르는 기억조각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김유정)와의 만남을 계속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아역의 재등장은, 서서히 나름의 캐릭터를 잡아가고 있는 성인 연기자들에겐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송중기의 세종과 한석규의 세종이 조우하는 순간이 있었는데요, 빼어난 연기력으로 청년 세종을 연기해낸 송중기로 인해, 시청자들은 한석규가 부담스러워 할 것으로 우려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 본좌 한석규는 이러한 우려를 가볍게 불식시킨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뿌리 깊은 나무에서 더 이상 송중기를 볼 수 없게 된 것을 아쉬워 했던 시청자들도 많았지요. 그런 와중에 극 중에서 송중기와 한석규가 마주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방송 이틀전에 촬영됐다는 이 장면은, 중년의 세종이 자아분열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스스로의 신념에 가득찼던 자신의 청년시절 세종을 향해 장년의 세종은 침을 뱉지요. 이렇게 자기모순에 괴로워 하는 장년 세종을, 청년 세종은 냉소와 연민이 점철된 복잡한 시선으로 마주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첨예하게 맞붙은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해품달 속에선 과거가 현재에 여전히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감성 연기의 여진구, 당찬 연기의 김유정, 꽃미남 시리즈를 구축한 아역의 허염, 운, 양명군까지...이들이 꾸준하게 드라마에 계속 등장하면서, 아역의 저주는 계속해서 성인 캐릭터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몇년 전만해도 국내 최고 수준의 미모를 자랑했던 한가인마저 외모때문에 지적을 받는 걸 보면, 해품달 속 아역의 저주는 더없이 깊어보입니다.
드라마의 구성 상 여전히 과거를 떨치지 못하는 드라마 속 인물들 만큼이나 시청자들 역시 아역 캐릭터를 잊지 못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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