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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스타&연예

종영 앞둔 1박2일, 나피디가 담은 유종의 미는?



1박2일 시즌1의 촬영이 두번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피디가 선택한 것은 경복궁이었습니다. 가까이에 두고도, 혹은 익숙한 모습임에도 그 의미와 소중함을 익히 느끼지 못했던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되돌아봤지요.

'가까운 곳에 진실이 있고, 가까운 곳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유홍준 교수가 말했는데요, 그동안 전국의 멀고 험한 곳을 누벼왔기에,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여행은 어찌보면 우리네 일상하고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봤을만한 곳인 경복궁을 우리는 너무 무심하게 지나쳐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익숙하게 봐왔던 경복궁이지만, 유홍준 교수의 애정과 자부심이 담긴 이야기가 보태지자, 경복궁은 도심 속 일상을 넘어 600백년 역사의 숨결로 새롭게 나타났습니다.

광화문 우편에 홀로 섬처럼 떠있는 동십자각은, 본디 경복궁 전면의 동쪽 끝 담장이었으나 일제감정기에 길을 내면서 끊어져야했던 오욕의 역사를 품고 있지요.
하지만 경복궁은 오욕의 역사를 견디고 여전히 우리네 자랑스러운 문화적 자부심을 오롯이 지켜내고 있습니다. 자금성보다 25년 먼저 지어졌다는 경복궁은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와 양식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지요. 엄숙한 공간인 궁궐의 초입에는 건축장인의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천록조각상이 있는데요, 궁궐을 수호하는 전설 속 동물상 4개 중 하나는 혀를 내밀어 '메롱'하며 웃음 한조각을 선사하지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근정전은 근엄한 풍채를 자랑하고 있지만 그 앞 마당은 소박하고 불규칙하게 박석을 배치하여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추구했습니다. 이를 두고 유교수는, 다양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이미 이곳에 구현되어 있다고 평가했지요. 특히 이 박석은 효율적인 배수설계와 어우러져 폭우가 내릴때 최고의 장관을 연출한다고 합니다. 폭우속에서 박석 사이를 수십갈래로 펼쳐 흐르는 모습은 실용과 예술의 만남이겠지요.

이는 온돌의 설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류 문명을 통틀어 최고로 효율적인 난방체제였던 우리의 온돌은 이곳 경복궁에서도 단연 두드러졌는데요, 연기는 배출하되 열기는 보존할수 있도록 각 건물의 굴뚝은 멀리 다른 건물에 붙어있었습니다. 바닥을 골고루 돌아다니던 연기는 길건너 먼 곳에 있는 굴뚝을 통해야 빠져나갈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 굴뚝에 섬세하게 수놓은 장식과 그림들은 어제 새겨놓은 듯 생생했습니다. 명작의 특징인 디테일이 아름답다는 것과 수백년이 지나도록 현대성을 유지하는 감각이라는 유교수의 해설과 더불어 바라본 궁궐 곳곳의 문양들은 우리네 아름다운 문화의 정수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날 경복궁 나들이의 최고 압권은 경회루였는데요, 천장하나하나까지 섬세한 문양들을 그려넣은 경회루의 내부는 간결한 아름다움이 돋보였습니다. 또 3단으로 이루어진 연회장도 이색적이었지요. 하지만 경회루가 간직한 최고의 걸작은 경회루에서 조망할 수 있는 풍광이었습니다. 창틀인 낙양각을 액자로한 위대한 자연의 그림을 즐기던 옛 왕의 영화가 떠오릅니다. 유교수의 지적처럼, 건축물을 바라봄에 있어 밖에서 구경하듯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건축물에 살았던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볼때 건축물은 진정한 역사의 자취와 정신을 보여줄 것입니다. 경복궁의 아름다움과 자부심은 모른 채, 스페인 알함브라 궁의 섬세함에 압도되고, 프랑스 베르사유의 화려함에 경탄했던 우리를 반성하게 만드는 대목이지요. 경회루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역사와 현재의 일상이 공존하는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무심히 지나쳤기에 알지 못했던 소소한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경복궁 역사여행은 그 어떤 먹거리나 볼거리보다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펼쳐놓으며 1박2일이 추구하고자 했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피디가 본격적으로 1박2일을 이끌게 되면서, 1박2일에선 화끈하고 강렬한 예능아이템이 다소 완화됐습니다. 다시 말해 까나리액젓을 원샷하는 치열함이나 짜릿함은 없지만, 대신 잔잔하게 마음을 일깨우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나피디 스스로도, 그동안 1박2일을 즐겨오신 시청자들을 위해 프로그램의 포맷을 확 바꿀 수는 없다며 어느정도 기존의 방식을 따랐지만, 여행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곤 했습니다. 전통의 장터나 유서깊은 곳을 찾기도 하고, 뻔한 줄만 알았던 5대광역시를 돌아보기도 했지요, 또 외국인노동자를 초청하기도 하는 등 재미 이상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그가 지향하는 1박2일을 두고, 예능이 아닌 다큐가 되어간다는 일부 비난도 있었지만, 웃음뒤에 남는 여운은 어쩔 수 없는 나피디의 이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여한으로 남는 아쉬움이 있다는데요, 바로 1박2일의 이름을 걸고 찾고자 했던 곳을 아직 못갔기 때문입니다. 나피디가 꿈꿨던 곳은 일본 우토로와 러시아 사할린인데요, 이곳은 일제시대 조선인들이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해야 했던 아픔의 역사가 어린 곳입니다. 그 '아픈 곳'에 '국민예능'으로서 찾아가고 싶었던 거지요. 하지만 시즌1은 이제 이별을 고하게 됐고, 나피디는 또다른 꿈을 찾아나서야 하겠지요.

마지막 녹화만을 남기고 있는 1박2일 촬영현장에서, 나피디는 이별여행이 아닌 일반적인 여행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눈물 날 일이 있겠냐며 마지막촬영을 대수롭지 않게 말했던 나피디는, 무언가 기념비가 될만한 대박 아이템보다는 우리의 주변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일깨울 수 있는 소소한 재미를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소하기에 더욱 여운이 남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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