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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드라마&시트콤

더킹투하츠, 흥행공식 연연치 않는 긴장과 아픔의 이중주

 

 


 

한국에서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여심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더킹은 캐스팅부터 흥행공식에 충실했습니다. CF황제로 대변되듯 한국에서 가장 두터운 팬층을 거느린 이승기와 늘 남자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드는 흥행불패의 하지원이 콤비를 이뤘지요. 이제 왕실의 품격있는 판타지를 남남북녀의 애틋한 로맨스로 담아내며 더킹의 흥행에 이상이 없을 것으로 예상됐는데요, 하지만 더킹이 선택한 길은 달달한 로맨스에 안주하는 착한 드라마가 아니었습니다. 그대신 시작부터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을 통렬하게 조명하더니 민족과 주권의 이야기까지 거침없는 전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구태를 묘사하더니 일본의 자위대, 남북화해에 부정적인 강대국의 역학관계는 물론 그림자정부로 일컬어지는 군산복합체의 실체까지 적나라하게 파헤치며 한없이 스케일이 커지고 있습니다.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했던 일부 팬층의 부담을 줄만한 상황이지요.

 

드라마의 또다른 흥행공식은 주인공이 겪는 고난의 수위 조절입니다. 결말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갈등과 고난이 필수적인데요, 하지만 그 고난이 너무 깊어지면 극중 인물에 몰입됐던 상당수 시청자들은 큰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이를테면 드라마 대장금 속 장금이는 모진 고난을 기어이 극복해냈지만 그 고난의 순간을 지켜보는 것이 부담스러운 시청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주인공이 모욕을 당하고 고초를 겪을때 깊이 몰입해온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리거나 자리를 피해 외면하기도 하는데요, 바로 드라마의 주 소비층인 여성시청자들에게 이러한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친절한 드라마들은 주인공의 고난이 필연적이라면, 다른 희망적인 암시와 요소를 더불어 배치해주고, 가급적이면 한 회분 내에서 긴장해소의 여지를 주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어제 방송된 더킹은 주인공의 극한 고난과 긴장을 다음주로 넘겼을뿐 아니라 예고편 역시 더한 긴장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재하(이승기 분)의 벚꽃 프러포즈와 이재신(이윤지)의 '좋아해요' 고백은 더킹의 명장면으로 꼽히는데요, 하지만 이들 커플은 지금 한결같이 큰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은시경에게 자신의 속내를 고백한 후 새롭게 태어난 듯 보였던 이재신에게 정신과 전문의는 단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은시경씨 때문에 일시적으로 힘을 낸 것일뿐 아직은 아니다' 그리고 은시경은 공주의 고백이후에 오히려 공주를 피하고 있지요, 스스로 공주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이런 은시경에게 공주는 '내가 장애인이라서 그러냐'며 처음으로 의심과 두려움을 드러냅니다. 전편에서 애틋한 러브라인이 구축된 줄 알았던 두 사람이었지만, 넘어야 할 고난과 아픔은 또다시 현재진행형에 머물고 말지요.

 

 

한편 벚꽃 프러포즈 장면에서 '감당할 수 있겠냐'며 김항아에게 당당히 물었던 이재하는,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납치된 김항아와 대왕대비는 비상식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존마이어에게 줄곧 통쾌한 한방을 먹여왔던 이재하는 반격의 의지를 접은 채 고통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의 순간을 더욱 긴장감으로 몰아넣는 주체는, 도무지 예측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존마이어의 캐럭터입니다. 극중 간간히 보여줬던 김항아와 이재하의 로맨스 장면도 존마이어의 시선에 노출되는 순간 긴장과 불안 속으로 빠져들곤 했었는데요, 이제 김항아가 납치되고 이재하가 무너지면서 긴장과 불안은 극단으로 치달았게 되었습니다. 이날 마지막 장면은, 살해위협에 노출된 대왕대비의 모습을 목격한 김항아가 존마이어측의 협박 속에서 이재하에게 직접 영상통화를 시도하는 장면이지요, 존마이어측은 그녀가 이재하에게 하야를 설득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눈물을 머금은 김항아의 표정은 비장하기만 했습니다. 극중 김항아의 캐릭터로 볼때 그녀가 결코 이재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진 않을 것도 명백하지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갈등은 다음주를 기약하며 '휙'하고 마감됩니다.

 

이렇듯 더킹은 안전한 드라마의 흥행공식을 따르지 않고 긴 호흡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주제를 거침없이 꺼내들었고 주인공들을 끝없는 고난으로 몰아부치고 있지요. 흥행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을 소위 작가주의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이렇듯 익숙했던 드라마의 틀에 도전하는 더킹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고난이 깊은 만큼 반전은 더욱 드라마틱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 은시경의 절망을 치유하는 것은 이재신의 몫일 수 밖에 없고, 언젠가 애인의 배신에 몸서리치던 존마이어에게 '잘못을 덮어주기 바란다'며, '사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말했던 이재하 자신도 결국 자신을 배신했던 비서실장을 다시 믿고 의지하면서 대반격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재하의 꿈속에서 김항아가 이재하를 안아주며 말합니다. '그 어떤 슬픔도 다 한때입니다. 언젠간 다 지나가는 거니까...' 김항아의 말은 비극을 암시하고 있지만, 오히려 깊은 고난은 전혀 다른 반전의 충분한 증거가 되겠지요. 이미 더킹에 익숙해진 시청자들라면 이러한 드라마의 긴 호흡을 따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