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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드라마&시트콤

더킹투하츠가 주는 정치적 메시지가 불편한가요?

 

 

더킹 15회에서 있었던 이재하(이승기 분)와 김항아(하지원 분)의 약혼식 장면을 두고 극중의 아나운서는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무디스는 신용등급을 AA로 상향조정하면서, 상존하는 전쟁의 위험 탓에 있어 왔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오히려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전환되는 등 이번 약혼식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40조를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단순히 남남북녀의 로맨스에 머무를 줄 알았던 이 드라마는, 예상을 뒤엎고 한반도의 치열한 정치역학을 들춰내고 남북화합의 의미를 되새겨주고 있습니다. 극 초반 남북 신뢰가 요구되는 미션에선 이재하가 결국 김항아에게 총을 쏘면서 남북간의 신뢰 회복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는데요, 실향민 세대가 점점 사라져가고 민족보다는 개인이 강조되고 있는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용감하게 이념적 화두를 던지는 드라마 더킹의 행보가 특이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더킹이 보여주는 남북화해의 달콤한 열매는 오늘을 살고 있는 한국인에겐 낯간지러우면서도 생소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20세기에 통일을 이룩해낸 독일은 통일 전부터 통일의 당위를 교과서에 담아왔습니다. 1980년대 서독의 교과서에 '언젠가 통일될 독일은 지금의 독일보다 더욱 위대한 독일이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을 당시, 한국의 학생들은 반공 포스터를 그리거나 간첩신고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자고로 따로따로 나라를 이뤄 살아오다가 한 나라로 지내본 날이 얼마 되지도 않았던 독일이 통일의 단꿈을 갈망했던 모습과, 수 천 년을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오다가 정치권과 주변강대국의 이해 속에서 남북대결 구도가 강조되어 온 한반도의 모습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조국의 원수들을 맨주먹 붉은 피로 막아내자'는 노래를 들으며 자라난 한국의 기성세대도 어느덧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만연 속에서 점점 북한에 대한 관심이 사그러들고 있지요. 이제 우리는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게 되었고, 요즘의 신세대는 북한이 동족이라는 사실조차 실감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러는 사이 남북간의 정서적, 문화적 이질감은 점점 확대될 수 밖에 없지요.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 '더킹'이 숭고한 남북화합의 당위를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낯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더킹이 던지는 이러한 정치적 메시지보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정서적 메시지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가 전해주고 있는 최고의 의미는 북한사투리의 재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원을 통해 들려지는 북한 말은 친숙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십 수 년 전 반공영화에서 접해봤던 북한 말은 정치와 군사적 대결의 그늘을 반영하듯 살벌한 거부감을 풍겼는데요, 더킹을 통해 만나게 된 북한의 사투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남도의 사투리 마냥, 우리네 정서와 교감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주고 있습니다.

 

독일은 지금도 패전기념일이 되면 총리가 무릎 꿇고 사죄하고 있습니다. '통념의 석'이나 '사과'니 '사죄'하는 단어의 표현수위를 놓고 줄다리기하는 일본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이는 독일인과 일본인의 성품 탓이 아닙니다. 독일은 그럴 수 밖에 없고, 일본은 안 그래도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주변엔 그러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막강한 강대국이 버티고 있는 반면, 일본의 주변에는 아직도 분열되어 자기끼리 다투는 남과 북이 있습니다. 남과 북이 갈라져 다투는 이상, 우리는 여전히 일본의 만만한 이웃으로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남북의 화합을 경계하는 주변국의 모습은 비단 드라마 '더킹'에 한정된 것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일개 드라마와 드라마의 시청자들이 이러한 국제 정치의 역학에 도전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너무 멀어져서 이제는 관심에서조차 사그러들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정서적 끈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세대에게 북한사투리도 남도의 사투리처럼 우리네 정서를 면면히 담아오고 있는 문화의 증거 임을 알려주는 것, 이것이 남북간 관계 회복의 시작이자 더킹이 남겨주는 소중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