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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죽음에 대한 드라마의 상식과 우리의 상식

 

 

한 드라마의 보조출연자가 죽었다. 이 드라마는 거대 방송국을 위해 제작됐지만, 방송국은 제작을 제작자에게 위탁했고, 제작자는 보조출연자의 관리를 하청업자에게 맡겼다. 따라서 보조출연자의 죽음은 하청업자가 감당할 일이다. 하청업자는 유가족에게 톱스타의 드라마 1회 출연료에도 못 미치는 2천만원을 지급했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한 지 한달이 지나 유가족들은 방송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국으로서는 해줄 수 있는 조치가 없다. 계약이 그러하고 시스템이 그러하다. 그저 방송국에겐 애매모호한 '도의적 책임'이 있을뿐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없다.


인간의 여흥을 위해 만들어지는 드라마의 제작 시스템에 인간이 보이질 않는다. 이는 단순히 드라마 제작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사회의 '게임의 법칙'이다.

 

소위 '비즈니스 마인드'가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방송이든, 병원이든, 대중교통이든 모든 분야에 걸쳐 경영합리화가 중요한 이슈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공공분야에 대한 민영화이야기도 곧잘 논의되고 있다. 이런 기업마인드 아래, 인간의 설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요즘이다.

 

이미 회사는 회사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고용된 회사의 사장은 회사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달릴 뿐, 다른 생각은 무가치하다. 당연히 회사의 사원들도 회사의 이러한 흐름에 따를 뿐, 거기에 어떤 개인적인 가치판단이나 사회적 책임감,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없다.


앞서 언급한 사고 유가족들이 방송국 앞에서 시위를 할때, 당신이 방송국 직원이라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가, 방송국에 도의적 책임을 운운하며 보상을 촉구할 수 있겠는가.. 조직의 일원이 된 순간, 개인은 그저 조직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뿐 생각과 가치판단에서 그냥 무력한 존재로 남을 뿐이다.

 

 

기업의 존재이유가 '이윤창출' 혹은 '이익극대화'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상식이고 이 시대를 사는 인간들의 상식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러한 명제에 함몰될때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대형마트와 거대 체인점이 영세 상인들을 내몰아도 이는 그저 게임의 법칙에 따른 것일뿐이며,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향해, 부자들은 '원래 저런 거다'라고 쉽게 납득해 버리는 세상이 되었다.

 

'이윤창출'이라는 당연한 상식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왜 인간인지를 잊게 되는 것 같다. 그 시스템 아래서 오늘도 우리는 시스템에 충실해서 땀 흘려 일하고 있을뿐이다. 그래도 자꾸만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들이 추구하고 있는 지금의 세상이 과연 우리를 위한 것인지, 우리는 점점 스스로의 설자리를 스스로 없애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어제 방송국에 나타난 사고 유가족이 방송국에 요구한 것은 '인간'적인 대우였다. 이것이 당연한 상식이 되는 날이 과연 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