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 2012.02.23 15:23


 

박원순시장이 아들 주신씨에 대한 병역의혹을 제기했던 강용석 의원과 그 동조세력을 모두 용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22일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에 의해 그동안 제기된 병역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서, 강의원은 사퇴를 발표했고, 이에 대한 박시장측의 대응이 관심을 모으던 상황이었는데요, 박 시장은 23일 오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분들이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해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겠다"며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용서하기까지 쉽지 않은 고뇌가 있었음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강의원의 폭로와 이에 동조하는 이들의 무자비하고 잔인한 언어 폭력이 가슴을 후벼팠다" "아내와 아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고 당시의 힘겨웠던 심경을 고백했고, 이에 형사고소는 물론, 민사소송을 제기해 알뜰하게 손해배상을 받는 등 끝까지 죄과를 추궁할 결심을 했었지만 결국 가족의 뜻에 따라 모두 용서하기로 결정했다고 했지요.

 

이번 용서를 지켜보는 대체적인 여론은 상당히 아쉬워하는 분위기입니다. 확인되지 않을 사실을 마구 폭로하는 정치풍토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라도 정당한 응징이 마땅하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고 있지요.

 

돌이켜보면 과거를 덮고 화합을 이루기 위한 시도는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공염불이 되거나 때론 조롱을 받기도 했지요. 얼마전 박시장은 대낮에 숱한 시민들 앞에서 따귀를 맞고 욕설을 듣는 봉변을 당한 바 있습니다. 그때에도 박시장은 문제 삼지 않았으나, 당시 모욕을 줬던 자는 또 다시 고 김근태씨의 장례식에서 행태를 부리는 등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 해온 우리네 정치풍토에서도 화합의 제스처는 으레 웃음거리가 되곤 했습니다.

화합을 이야기했던 노 전대통령의 경우권력이 최고 정점에 있던 집권 초기에 자신의 지지세력에게 큰 상처를 남긴 대북 송금 특검을 수용하기도 했지요. 이는 정치적 득실을 따지지 않고 화합과 소통을 해보자는 대승적인 양보였음에도, 특검은 정치적으로 악용되기만 했을뿐, 당시 야당(한나라당)의 협조나 양보는 전혀 없었습니다. 대신 노전대통령은 정치적인 부담과 지지세력의 와해라는 상처만 입어야 했습니다. 집권 중반을 지나 제의했던 대연정 제안 역시 야당의 웃음거리만 산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요.

 

이렇듯 사적인 신상의 문제이든 거시적인 정치적 상황이든, 통합과 공존을 모색하는 화해의 손길은 대체로 무시당하고 모욕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박시장의 따귀를 때리고 욕설을 퍼부었던 여인은 여전히 행동에 변함이 없음을 박시장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가족들까지 큰 고통을 겪었음에도 그는 또다시 용서를 결심했습니다.

죽음을 맞았던 노 전대통령의 마지막 말은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왜 박시장이나 노전대통령은 응징과 복수를 요구하지 않을까요.

 

그리스 신화 속 시지푸스는 영원히 죽지도 못한채, 다시 굴러 떨어질 바위 덩어리를 끊임없이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만 했습니다. 어김없이 다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계속해서 굴리기만 하는 시지푸스의 숙명.

 

이 땅에서 공존과 화해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역시 시지푸스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 속에 끝없이 용서와 화해의 돌덩이를 고통스럽게 밀어 넣기만 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눈물과 땀은 대가를 누리지도 못한 채, 오히려 배신당하고 조롱 당할지라도 바위를 움직이는 격한 몸놀림은 끝나지 않겠지요.

이럴 수 있는 이유는, 딱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며, 감정적으로도 밉다고 한들, 그 사람들을 모조리 이 땅에서 내쫓고, 같은 생각과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살 방법이 없기때문입니다. 좋건 싫건 더불어 아웅다웅 살 수 밖에 없는 것은, 험난한 현대사를 지나고 있는 한국인의 숙명입니다. 세력을 나누어 한쪽을 모조리 내몰수도 없는 현실에서, 공존과 화해의 희망마저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암울할 뿐이겠지요. 나를 울리고, 아프게 하고, 분노케하고 억울하게 만드는 인간들도 더불어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이 땅의 이웃이라는 점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오늘도 소득이 없어 보이는 미련한 용서를 또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미련한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는 한, 우리에게도 공존과 화해의 희망은 유효할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냉혹한 응징보다 화끈한 용서에 더 큰 용기가 요구되리라 생각합니다.


 


Posted by 비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