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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드라마&시트콤

더킹투하츠, 전설로 남겨질 두 눈동자

 

 

 

 

'스스로 막아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 세상에서 젤 무서운 게 전쟁이라는데, 그걸 막아냈는데 뭘 못하겠어, 고마워 우릴 강하게 만들어 줘서'

 

남과 북의 전쟁에 대한 태생적 두려움을 비웃던 존마이어에게 이재하가 답한 말입니다. 드라마 더킹은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휴전국인 남과 북의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그 해법을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결론은 '신뢰 회복'이었습니다. 극 초반 남북간의 신뢰가 요구되는 WOC미션에서 이재하는 김항아에게 총을 쏘고 말았었지요, 비극적 현대사를 겪은 남과 북이 신뢰를 회복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평양 폭격을 결정한 상황에서 평양은 서울 폭격을 경고할 수 밖에 없고, 서울은 전시체제돌입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 한반도의 정치 시스템을 극복할 방법은 오직 남북의 신뢰회복뿐이었습니다.

전시체제에 돌입한 남북의 대치상황에서, 김항아는 신뢰를 간직한 채 스스로 북으로 돌아갔고, 이재하는 그 신뢰를 공유했기에 김항아를 떠나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앞에 놓여진 정치 현실은 지독한 불신과 극한 대결이었지요.
남북의 핫라인은 끊어졌고, 북측은 남침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이 사태에 절망해버린 김항아의 아버지는 망명을 결심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김항아는 북의 수뇌부와 담판을 지어 남북의 비공개 회담을 이끌어냅니다. 그 자리에서 김항아와 이재하가 마주합니다.

 

 

그녀를 의심하고 있는 북측의 시선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항아는 이재하 앞에서 냉담한 태도를 견지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빈틈을 드러내지 못하는 김항아의 외로움과 절실함을 느낀 이재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한동안 말을 잃지요. 그는 자신의 여인이 남의 시선 앞에서 힘겨운 연출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뜸 모니터에 대고 북의 수뇌부를 향해 말하지요. '나한테 말하세요, 항아가 봉이에요? 직접 얘기할 수 있는데 왜 항아 뒤에 숨냐'며 북의 수뇌부에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직접 전달합니다. '어차피 그쪽은 죽는다, 우리도 죽는다. 미국은 그쪽 쏘고 그쪽은 우리 쏘고, 중국까지 개입하면 이 땅에 우리들은 살아남지 못한다'며 자신의 해법을 이야기합니다. 미국의 공격 디데이에 결혼을 하겠다는 거지요.

 

하지만 북측은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합니다. 북측이 확답을 피하자 이재하는 비상벨을 울립니다. 회담장 밖에 있던 양측의 군인들이 달려 들어와 서로에 총을 겨누지요, 지금 결정 못할 거면 나를 쏘라며 북측을 강하게 압박합니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면 먼저 손 내밀 수가 없겠지요, 이재하는 사랑하는 여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숨을 내놓고 신뢰를 요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북측의 위원장이 우물쭈물 말이 없자 김항아마저 총을 들어 이재하를 겨눕니다, 그리고 북측에 묻지요. '쏩니까' 이재하는 진정 총 맞아 죽을 각오를 했고, 김항아는 진정 총을 쏠 각오를 했습니다. 남북의 마음이 죽음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음을 절망했기 때문이지요, 이순간 서로를 바라보는 두 남녀의 눈동자에는 몸서리치는 슬픔과 고통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 슬픔과 고통의 감정 너머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자리잡았습니다.

 

 

정신분석학자 제임스 보그에 따르면, 인간의 의사소통에서 말 자체가 가지는 비중은 의외로 적다고 합니다. 인간의 교감에 있어 말의 내용은 7%, 목소리와 같은 반(half)언어적 요소가 38% 시각적인 요소가 55%라는 그의 연구결과는 배우의 연기력을 생각해보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국어책 읽듯 명대사를 읊어봐야 시청자들은 연기에 몰입할 수 없을 것이며 절절한 목소리 이상으로 우리는 배우의 눈빛과 얼굴색을 통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교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성을 느끼는 것도 입이 아닌 눈빛을 통한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배우 하지원과 이승기의 눈동자가 교차하던 이 순간의 애달픈 감정 역시 한 줄 글로 묘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그야말로 전설로 남겨질 두 눈동자였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서로의 목숨을 맡겼을 때, 북의 위원장도 마음을 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황이 종료된 순간, 김항아는 비로소 경직됐던 몸과 마음을 풀고 이재하의 품에 쓰러지는데요, 그 사내야말로 언젠가 그녀가 말했듯 '자신이 존경하는 남자'였습니다.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지만 현실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존마이어는 종신형에 처해졌지만, 클럽 엠은 여전히 건재했고, 여전히 남과 북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요.

 

남북이 갈라서길 60년, 전쟁의 참상도 이산가족의 눈물도 우리네 기억에서 잦아들었고,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도, 통일의 필요성도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작금의 세대에게, 우리가 얼마나 무감각하게 살고 있는지를 아프게 꼬집어 준 드라마 더킹.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 더킹은 그래서 명품 드라마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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