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tainment On/드라마&시트콤 2012. 5. 26. 07:00

 

 

최근 종영한 드라마 더킹은 유달리 많은 도전이 있었습니다. 우선 시청률을 담보하는 편안한 로맨스에 안주하지 않고 불편한 한반도의 현실을 속쓰리도록 아프게 들춰낸 작가주의적 시도가 있겠지요, 그 여파로 시청률은 다소 부진했지만, 웃고 즐기던 드라마의 시류를 뛰어넘는 화제성과 진한 여운을 남겨줬습니다.


CF 황제라 불리울 정도로 가장 핫한 연예인 이승기로서도 녹록치 않은 도전이었는데요, 착하고 성실한 국민 남동생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고 '배우' 그 자체로 거듭나기 위해, 찌질하고 이기적인 캐릭터로의 변신은 위험해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극중 안하무인으로 시작해 스스로를 극복하고 성숙한 남편이자 위대한 왕으로 우뚝 서는 캐릭터의 모습은 그 자체가 더 큰 배우로 성장하고 있는 이승기의 변신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끊임없는 도전의 대명사 하지원의 경우, 이쁘게 화장한 얼굴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던 것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입니다. 드라마 시크릿가든, 영화 7광구와 코리아를 통해, 화장기 없는 얼굴로 숨가쁜 액션을 펼쳐온 그녀에게, 더킹 역시 스펙터클한 액션을 요구했는데요,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품격있는 왕가의 패션을 제공했지요, 오래만에 그녀의 연기에서 분냄새가 느껴져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이 주연배우들만큼이나 빛났던 조연배우들이 있습니다. 조정석은 첫 공중파 도전을 통해 단숨에 핫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조연으로 시작해 주연급 연기자로 거듭났지요. 그의 연기가 주는 매력은 깨알처럼 섬세하면서도 오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태산같았던 아버지의 비리 사실을 알고 내보인 빗속에서의 오열장면은 과하지 않아서 오히려 자연스러웠고 진정성이 느껴졌지요. 가수에 비유하자면 폭발적인 고음을 내질러도 환영받을 절정의 순간을 오히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성숙미가 돋보였습니다. 연기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배우지요. 그래서 마지막 유언비디오에서 어수룩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주억거리는 입술과 어설픈 헛기침조차 여심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윤지의 경우 익숙했던 공주 역할에 또 다시 나섰습니다. 그 동안 공주의 화려한 이미지를 풍겼던 그녀는 더킹을 통해서 공주 이상의 공주가 될 수 있었지요, 절망 속에서 히스테리도 부리고 애달픈 로맨스에 눈물 짓기도 했던 공주는 미간의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감정을 옮기는 깊은 연기를 선보였지요.

 

 

이 드라마엔 내공있고 탄탄한 배우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김항아의 아버지 김남일은 북한에서 막 넘어내려온 듯한 천연덕스런 북한 사투리와 제스처로 극의 리얼리티를 더해줬는데요, 정치를 호령하고 국정을 논하던 그도 딸앞에선 딸바보일 뿐이었습니다. 시집가는 딸이 아비를 걱정하자 '너만 잘 살면 난 일없시야'하며 돌아서서, 눈물을 닦아내는 그의 뒤태엔 우리네 아버지의 정서를 진하게 담겨있었지요.

 


극초반의 WOC부터 참여했던 권영배는 딱 북한군 스러운 비주얼을 보여줬는데요, 순박하면서도 우직한 군인이었지만, 살짝살짝 속내를 드러내더니 최종회에선 이재하에게 겨눈 총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흐려지는 두눈과 사시나무 떨듯 떨리던 손은, 이념과 인간애가 대립되는 모순된 우리네 역사를 내밀하게 그려주는 듯했습니다.
사이코패스 존마이어를 돕는 수하 봉봉의 그로테스크한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검은 스모키화장과 탁한 눈동자뿐 아니라, 나른한 표정으로 내뱉는 나직하고 느릿한 대사 톤은 영어로도 한국인의 정서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요.  

 

더킹에선 짧게 스쳐가는 단연배우조차 연기의 빈틈이 없었습니다. 화기애애했던 현장분위기만큼이나 저마다의 배역에 몰입한 이름 없는 배우들의 명연기가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흔들임없이 확고한 결말을 내보일 수 있었겠지요. 최종회에서 판문점을 넘어가는 이재하와 눈빛을 교환하고 결혼 축하인사를 하는 헌병부터,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남북한 군인들의 여상스러운 모습까지...단연배우들이 보여준 연기 하나하나가 만나서 근래에 흔치 않은 드라마, 더킹의 도전은 완성될 수 있었겠지요.


Posted by 비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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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늘못 2012.05.26 0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동안 더킹을 내밀하게 잘 분석해주셔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님 덕분에 놓쳤던 부분도 다시 보게 되고 좋았어요. 배우들에 대한 애정어린 말씀도 깊이 공감되네요. 저 역시 주조연부터 단역까지 어느 곳 하나 연기구멍이 없었다는 사실, 아니 늘 상상했던 것 이상의 연기를 선보인 연기자들에게 놀랍고 감탄할 따름입니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 등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 걸 보니, 명품드라마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어려운 주제를 끝까지 밀고 온 작가와 연출가에게도 고맙구요. 은시경의 죽음이 가슴에 대못처럼 남긴 했지만요. ^^;;

    • 비춤 2012.05.26 0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큰 관심을 가졌던 만큼 아쉬운 대목들도 눈에 들어왔지만 끝나고 나니 허전함 마음도 듭니다. 이것도 여운이겠지요. 여러 말씀 감사했습니다. 편안한 연휴 되십시요^^

  2. pure 2012.05.26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연이라고 씬이 많아서 얼굴 많이 나오는게 최상은 아니잖아요?
    어떤 분이 '여자 주인공 항아의 비중이 너무 작다,, 하지원 이란 배우 데려다 놓고 이렇게 홀대하냐 ' 라는 댓글 올리거 본적 있는데, 드라마 주인공 혼자서 만들어 내는거 아닙니다..
    대사 한마디 없어도 잠깐 스치는 얼굴에서 조차도 그 표정으로 얼마만큼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는지....
    재하와 항아의 결혼식 장면 중,위 캡쳐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뒤에 보초서는 남,북의 군인들이 서로 수줍은 듯이 웃는 모습 보고 전 맘이 짠 했답니다.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이런 작은 장면 하나 하나가 명작을 만드는게 아닌가 합니다...
    글구 여자 주인공 비중 결코 낮지 않았구요, 비록 초,중반 씬이 좀 적었다 한들, 하지원씨 연기력으로 충분히 비중 꽉~ 채웠거든요..
    너무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고... 그리고 전 연기자와 스텝의 어우러짐으로 정말 좋은 드라마가 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 비춤 2012.05.26 0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보면서 자꾸 하지원씨의 모습에 자꾸만 눈이 갈 수 밖에 없더군요. 눈빛의 종류가 어찌 이리 다양한지.. 지적하셨듯 존재감이란 분량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겠지요. 감사합니다.

  3. 또웃음 2012.05.26 1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요. 출연 배우 모두가 명품이었습니다. ^^
    트랙백 걸고 가요. ^^

  4. 2012.05.26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단역들중..... 최고의 '단역'은 뭐니뭐니해도
    북한 여아나운서 아닐까해요... ㅋㅋㅋ

    헌병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애국?심마저 느껴져 설레기도 했고
    나중엔 이윤지와 친하게 되었다는 앵무새도 명품단역계열에 합류된듯 ㅎㅎㅎ


    마지막 봉구의 외침은 끝까지 대한민국에 물고 늘어질 직언이더군요
    그래서, 이제, 작가가 할말은 다 했나 모르겠네요.
    .. 챙겨본 드라마가 그런 결말이여서 만족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5. 징징이 2012.05.26 1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좋은 드라마라니.. 이렇게 멋진 배우들이라니... 감독과 작가 때문에 시작한 드라마지만 볼수록 배우들이 좋아졌던 드라마입니다. 다시 봐도 멋지더군요. 네멋이 지금 봐도 멋진 드라마이듯 이 드라마 또한 10년 후에 봐도 여전히 감탄하게 될 듯합니다. 그런 드라마가 몇 개 없는 저로서는 올 봄 정말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