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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스타&연예

추적자, 감히 해피엔딩이 될 수 있는 이유

 

 

 

첫 회, 법정에서 PK준의 무죄를 간절히 갈망하는 소녀 팬들에 둘러쌓인 채 '이 재판 아직 안끝났어'고 외치며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던 백홍석(손현주 분)은, 마지막회에 또 다시 법정에 섰습니다. 죄수복을 입고 피고석에 앉아 있는 백홍석이지만, 그때와 달리 전혀 외롭지 않았지요. PK준의 무죄판결에 환호하며 좋아하던 방청석의 모습과는 달리 백홍석의 유죄가 선고되자 방청석은 야유가 쏟아졌고 비통함과 분노로 가득했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이 남자를 믿어줬던 사람이 다섯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건만, 이제 법정을 가득 메운 방청객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 그의 무죄 혹은 선처를 기대하며 그를 믿고 지지하고 있었지요, 10%로 출발한 시청률이 막판 20%를 넘길 정도로 급상승하며 드라마가 외적으로도 성공했을뿐 아니라, 드라마 내적으로도 외로운 싸움에 나섰던 백홍석의 진실에 눈뜬 국민의 지지와 믿음을 얻어내며 그의 외롭고 고단했던 '추적' 역시 성공한 셈입니다.

 

 

강동윤 징역 8년, 백홍석 징역 15년... 헌데 드라마 속 판결은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힘없는 소시민에게 법은 끝내 눈물을 보여주지 않았지요, 그래서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끝까지 시청자를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드라마가 시청자와 타협해서 무죄를 운운하며 유쾌하게 마무리되었다면, 그동안 추적자가 보여줬던 통렬한 현실 고발과 대반전 역시 한낱 농담으로 남겨졌을 것입니다. 91.4%란 경이적인 투표율로 권력을 심판한 위대한 국민의 선택 역시, 그냥 드라마 속 허구로 허무하게 기억됐겠지요.

하지만 드라마 추적자는 백홍석에게 스스로의 죄를 이게 만들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드라마다운 허무한 승리 대신 엄존하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긴 여운을 남겨줬습니다. 현실적이지 못한 기적은 잠깐의 유쾌함은 줄지언정, 쉽게 잊혀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력구제를 금하는 대한민국의 법원은 결코 법정 모독을 용인할 수 없었습니다. 무법보다 악법이 낫듯 법의 존엄은 그럼에도 지켜져야 하겠지요, 그런 가운데 드라마의 결말은 치열할 정도로 공평했습니다.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었던 서지수는 가장 비참하게 몰락했습니다. 사랑을 잃고 가족과의 화해도 저버린 채 표독스러운 분노를 표출하며 법의 심판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모든 것을 가진 줄 알았던 서회장은 그가 진실로 두려워 하던 절대 고독에 방치됐습니다. 강동윤은 모든 욕망을 내려놓은 채,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사람으로 남겨졌습니다.

그리고 백홍석은 죄를 짊어짐으로써 여전히 백홍석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내를 잃었지만, 그 이전이나 이후에나 변치 않는 영원한 아빠이자 영원한 남편이 될 수 있었지요.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른 누군가의 잣대로 평가 받는 것에 익숙합니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남 부끄럽지 않은 수준은 되는지.. 신경쓰이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백홍석은 자신의 삶과 목표를 다른 사람의 평가에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판단했고 스스로 결심한 바를 위해 자신의 남아있는 전부를 걸었습니다. 바로 수정이 아빠로서 의무를 완료하는 것 말입니다. 그 길은 딸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당당한 방법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변호사가 제시한 심신미약, 심신상실을 받아 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딸을 위해 강동윤과 맞서던 그 모습 그대로 법정에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딸에게 당당한 아버지로 남았습니다. 그 백홍석에게 현실의 법은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살인 유죄, 도주 유죄, 특수공무 집행 방해 유죄, 법정 모욕죄 유죄...이에 본 법정은 피고인 백홍석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다' 지켜보던 황반장은 눈을 감았고, 조형사는 탄식했으며 서기자는 눈물을 흘렸지요. 이때 백홍석에겐 딸 수정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아빠 고마워. 아빤 무죄야'라는 수정이의 말과 동시에 판사의 판결봉소리가 법정에 울려퍼집니다.

 

 

비열한 웃음을 짓는 검사와 아우성치는 방청석이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백홍석의 시선은 오직 딸 수정이를 바라볼 뿐입니다. 다른 누군가의 비웃음이나 연민, 분노는 백홍석의 안중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그의 힘겨웠던 '추적'을 평가해 줄 수 있는 오직 한사람, 그의 딸 수정이만이 그를 온전히 판결해 줄 수 있었지요. 비로소 백홍석이 고단했던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백홍석은 젖은 미소로 화답할 수 있었지요.

 

우리네 어두운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했던 이 드라마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백홍석에게 건네줄 수 있는 최선의 해피엔딩이었습니다. 백홍석이 바란 건 기적이 아니라 진실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