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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오상진도 포기한 MBC의 자존심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인사권이 공정하게 행사되지 못하는 현실을 자주 실감하게 된다. 이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인사권자와 피인사권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인사권자로서는 상식을 파괴하는 파격적인 인사권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과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조직을 확고하게 장악할 수 있다. 특혜를 노리는 피인사권자 역시 인사권자 밑에서 납작 엎드리고 있으면 언젠가는 자신도 그 자리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는 대체로 총족되어 왔다.

 

사실 이러한 인사권자와 피인사권자의 확고한 신뢰(?)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하는 조직도 나름의 경쟁력이 있다. 군대라든가 규격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처럼, 다양한 목소리나 합리성보다는 효율성과 일관성이 요구되는 조직에선 강력한 카리스마 아래서 정돈된 문화가 더욱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규격품이 아닌 문화와 콘텐츠를 생산하며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 분야라면 이는 치명적인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방송은 기술보다 콘텐츠를 요구하는 산업이다.

 

 

이십여년전 IT산업이 전도유망해 보였을때 숱한 젊은이들은 너도 나도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신기술과 신지식을 습득한 이들은 단순 노동자수준으로 전락했고 정작 IT산업의 열매를 쟁취한 사람들은 콘텐츠와 이미지, 브랜드를 생산하는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게임업체에서 프로그램 기술을 가진 사람은 박봉에 시달렸고, 게임의 스토리와 이미지를 창조한 사람이 화려한 IT의 수혜를 누릴 수 있었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카리스마 있는 사장 밑에서 사장 입맛에 맞는 결재서류를 챙기는 대신 자신만의 이야기, 자신만의 철학을 내보일 수 있어야 한다. 창조의 근간은 자존심이다. 자아에 대한 확신없이 어떻게 창조가 가능할까.. 헌데 요즘 MBC에는 자존심은 커녕 상식도 보이지 않는다.

 

MBC노조가 170여일의 파업을 중단했던 이유는, 새로운 방문진 이사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김재철 사장 해임안이 처리될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사진과의 교감도 있었고 정치권도 한목소리로 거들었다. 그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방송국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현장복귀가 이뤄졌지만, 해임안은 없었던 일이 되었고 파업에 참여했던 노조원은 방송으로 복귀할수 없었다. 오히려 파업을 외면했던 직원들만 여전히 승승장구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장의 권력이 더욱 공고해진 셈이다.

 

 

최일구에 이어 오상진도 사표를 냈다. 이들은 MBC가 키워낸 인재이자 브랜드다. 현 MBC의 경영진은 이들을 활용할 능력도 의지도 없이 스스로 오랜기간에 걸쳐 길러낸 자산을 방치했다.


약 1년전, 사람들은 종편채널을 비웃었다. 그 주된 이유는 공공재인 방송이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서는 안된다는 믿음과 상식때문이다. 그리고 한 공영방송의 낙하산사장이 독단으로 방송 편성을 통제하자, 공영방송의 직원들은, 스스로 자신의 방송국이 종편과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파업에 나섰다. 하지만 직원들은 끝내 자신의 방송국을 지켜내지 못한 채 하나 둘 방송국을 떠나고 있다. 떠나는 이들의 자존심은 무너질때로 무너지고 말았다.
남겨진 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의 방송국은 종편보다 우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