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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독재자의 딸은 품는데, 왜 바보의 딸은 못 품을까

 

 

 

 

민감한 시기에 박근혜 당선자를 특별히 비난할 뜻은 없다. 이제는 당선자가 주장해온 국민대통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니까, 그럼에도 그녀가 독재자의 딸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타임'지 아시아판의 표지를 장식한 the Strongman's daughter 라는 표현이 국내에서 애매한 의미로 논란을 일으키자, '타임'지 측이 즉각 the Dictator's daughter 로 고쳤던 해프닝을 굳이 들춰지 않더라도, 일주일전 서구의 유력 언론들이 일제히 한국의 선거 결과를 보도할때도 어김없이 그녀의 수식어는 독재자의 딸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국민은 독재자의 딸을 품었다. 독재자의 금고에 남겨졌던 6억을 수수한 것은 본인도 인정한 말그대로의 사실이고, 그 외에 정수장학회나 여타 의혹들도 국민의 선택 앞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국민의 선택에 후회가 없기를 바랄밖에..

 

 

어제 노무현 전대통령의 딸 노정연씨에 대한 결심공판이 있었다. 검찰은, 13억원을 신고하지 않고 해외송금한 이유로 그녀에게 징역6월을 구형했다. 이 자리에서 노정연씨는 선처를 구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변호인은 이번 공판이 비공개로 진행되도록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그녀의 눈물은 여론의 숱한 비난에 노출됐다.

 

노 전대통령의 수식어 중 대표적인 것이 '바보'다. 지역구도를 타파하겠다며 정치적 불모지에 출마해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 이유도 있지만, 그는 도무지 이땅의 순리(?)를 따르지 않았었다.


이회창씨를 국무총리로 기용한 YS는 이회창이 돌출행동을 하자 분노했었다. '누가 그 자리에 앉혔는데..'  어느 감독 출신 야구해설가는, 대타가 삼진을 당하자 중계현장에서 분노했었다. '기용해준 감독의 은혜를 모르고 저런 어이없는 스윙을...'


그 자리에 앉혀준 사람에게 반드시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이땅의 순리다. 조선 초기 사육신이 죽임을 당하고 생육신이 쫓겨난 이래,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은 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윗사람 눈치 안보고 그 뜻을 거스르는 것은 '불충''불의'로 불려졌고, 의리를 모르면 짐승 취급을 당하기도 했으며, 모난 돌은 정을 맞았다.

 

노무현은 이러한 순리를 따르지 않았다. 국정원장 정기 보고를 폐지 했고, 선거관리위원회에 막강한 권한을 줘서 독립시켰다. 퇴임했을땐 검찰에 전화 한통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지켜서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퇴임한 노무현을 기소했을 당시의 검찰 총장 임채정은 노무현이 임명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에게 충성할 사람을 검찰 총장에 앉히지 않았다. 그래서 집권말기 노무현은 식물대통령이었다. 사정기관을 움직여 정적을 압박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통치에 활용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바보다. 현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숱한 의혹을 보면 더욱 확연하다.

그렇게 바보 노무현은 우리에게 수백년 묵은 숙제를 남겨주고 떠났다. 그리고 그가 떠난 자리에 그의 딸이 눈물 짓고 있다. 아직 이 땅은 그 딸을 품어줄 수 없다. 우리의 위선을 들췄던 노무현이 밉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