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 2013.01.31 07:00

 

 

드라마 7급공무원은 가볍게 즐길만한 코믹첩보물이다. 국정원의 이야기라도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사람이 앞설수 밖에 없다. 조국과 국가를 강조하고 희생을 요구하는 국정원이라지만, 훈육관은 바가지 긁는 아내의 등쌀에 시달리는 가장일수밖에 없고, 신입요원은 어린시절의 로망과 현실의 격차에 한숨을 내쉬다가도 여자 동료에게서 신선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7급공무원은 딱딱한 이야기에 머물지 않을 수 있다.

 

헌데 이 코믹첩보물에서 자꾸만 드러나는 무거운 이데올리기가 걸린다. 문득 두 장면에서 엉뚱한 비약을 하게 된다.
공도하(황찬성)는 신념에 찬 얼굴로 국가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양심도 기꺼이 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선 테러리스트(엄태웅)는 국가야말로 가장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집단이라고 강조한다.

 

 

엄태웅이 말한 그런 국가의 대표주자로 일본제국이 있었다. 일본국민은 국가라는 대의명분 아래 벌어진 인류 최악의 범죄를 스스로 제어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수백년간 허수아비에 불과했던 일본 천왕이 뜬금없이 신격화되면서 모든 국민의 이성과 판단력은 마비됐고, 일본인들은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주변을 파멸로 이끌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이러한 일본식 문화가 가장 끈질기게 남아 있는 곳이 군대였다.
조직을 위해 개인이 허용되지 않는 문화, 드라마 속 국정원에서 집단과 동기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 강조하는 바로 그 문화말이다.


그래서 군대를 다녀온 기성세대들은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전쟁영화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작전 중에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미군이, 술집이나 사적인 장소에서는 상관에게 주먹을 날리는 장면이 다반사로 나오는 헐리우드 영화는 일본식 권위주의에 익숙했던 기성세대를 혼란스럽게 만들곤 했다.


그럼에도 군대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여전히 사회에 나와서도 상사가 부하직원의 사생활을 무시로 침범하는 것을 자연스레 여겨왔다. 상사의 아내는 부하직원의 아내에게도 윗사람인냥 여겼고,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는 조직문화가 유효한 곳이 많았다.

 

 

요즘 그러한 조직의 곳곳에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드라마 속 국정원에서처럼 말이다.
극중 훈육관 김원석(안내상)은, 개인의 정당한 평가를 요구하는 한길로(주원)에게 숭고한 가치를 내보인다. '요원의 진짜 자존심은 동료보다 먼저 죽는거다' 그런 훈육관에게 한길로는 깊이 고개를 숙인다. '명심하겠습니다. 근데 이거 한번만 다시 검토해주면 안돼요?'

 

어린시절부터 첩보원의 꿈을 키워온 한길로, 그의 가슴을 끓게 한 것은 집단주의 아래 개인의 존재를 숨긴 잊혀진 첩보원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되 틈틈히 개인의 여흥(?)도 즐겼던 007 제임스 본드다.
집단주의는 영웅을 낳지 못한다. 일본이 미국에게 패한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영웅이 없는 집단주의가 영웅 만들기에 적극적인 미국의 개인주의에 눌렸다는 것도 한 까닭이 될 법하다. 그리고 여전히 헐리우드는 영웅만들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드라마도 스타가 필요하다. 한길로가 국정원이 주입하는 대로 집단주의에 자신을 매몰시키는 순간 스타도 증발할 수 밖에 없다.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철부지 한길로의 앞길엔 조직에서의 일탈이 예고된다. 바로 이 드라마가 작금의 국정원을 떠받히고 있는 조직문화에 정면으로 맞설 수 밖에 없는 이유다.


Posted by 비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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