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taste 2010.06.12 09:05



 
월드컵 우승컵을 번갈아 차지하고 있는 유럽과 남미..
그들의 축구 역사 역시 유구하다. 유럽에서 축구의 기원은 대체로 12세기 프랑스에서 발생한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근데, 영국의 사가들은 이보다 조금 이른 11세기 쯤으로 주장하고 있다.
전쟁 후에 적군의 해골을 발로 차대며 놀았다는 것을 축구의 시초로 보는 것이다.
최초를 주장하는 것도 좋지만, 나 같으면 굳이 내세우고 싶지 않을 거 같은 최초다..
이후 가축의 방광에 바람을 넣어 만든 공으로 해골을 대체하면서 나름 스포츠의 면모를 갖췄다고 할수 있겠다.
이렇듯 유럽의 축구 역사는 천년을 넘지 못한다.
 
중남미 쪽에선 유럽인들이 건너와 축구가 전해졌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에게도 나름의 유구한 축구 역사는 있는듯 하다. 중남미의 역사기록은 대부분 유럽인들에 의해 유실되었기에 명확한 판단에는 한계가 있지만,
아즈텍에선 축구 경기장으로 추정되는 고대 경기장의 흔적도 보이고 고무나무의 수액으로 만든 공을 차는 모습이 담긴 낙서가 남아있기는 하다.
 
한편 우리 한민족 역시, 축구 역사가 깊다.
넓은 공터 양편에 높은 장대를 세우고 장대 위로 망을 친다. 한 팀당 정원은 7~9명이고, 그 망 위에 공을 얹는 것으로써 득점하는 경기. 바로 축국蹴鞠이다. 
 
중국측 사서인 구당서에까지 고구려 사람들이 축국을 잘한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이미 우리 공차기의 명성은 나라밖까지 소문이 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축국은, 신라 통일의 주역 김춘추와 김유신이 사돈의 연을 맺은 유명한 일화에도 등장하지 않는가..
함께 축국경기를 하다 김유신의 태클에 김춘추의 옷이 찢어졌고, 이에 김유신이 춘추를 누이동생 문희에게 데려가 옷을 꿰매게 하면서 이들은 일가를 이루게 된다.

- 여담이지만 원래부터 이 소개팅은 유신의 계획에 의한 듯하다. 처음엔 바느질을 큰 동생에게 맡기려 했으나 수줍어 거절당했고, 당찬 둘째동생 문희가 그 임무를 기꺼이 수락했다.
전설에 따르면 유신의 제안을 받기전, 큰 동생이 꿈을 꿨는데, 자신의 소변이 온 마을을 떠내려 가게 하는 꿈이였단다. 이 망칙한 꿈을 문희가 샀고, 바느질 임무가 주어졌다고 한다 -
 

서양의 축구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8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전통축구가 축국임에 당시 이 양식 축구를 척구擲球라고 구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929년 침체되어 가는 민족 의식을 함양하고 민족단결을 다지고자 경성대표와 평양대표 간의 경평축구가 개최됐었다.
그 경평축구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남북 축구교류전이 1990년에 성사되기도 했었고 이후 국제무대에서 가끔 스치는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축구 역사 천오백년 이상의 한국축구.. 바램이 하나 있다면 이번 남아공 월드컵 결승에선 남북 대결이 성사되어
새로운 경평축구의 원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여담인데 어머니가 월드컵이란 단어가 기억이 안나셨나보다. 아버지한테 물어셨다.
 '이번엔 크~~은 축구대회가 있다면서요?' 근데 어버지는 못 알아들으셨다.
어머니가 또 말씀하신다. '이렇게 비가 와서 축구 어떻게 하냐..'
 
난 확신한다. 이번에 남북대결이 성사된다면 우리의 축구는 더이상 이러한 무지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비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