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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예능&오락

남자의자격 이경규, 어설퍼서 오히려 흥한 몰래카메라



                어설퍼서 흥한 몰카

어제 양준혁과 함께 한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의 마라톤 이야기가 몰래카메라와 함께 마감됐습니다.
사실 양준혁 선수의 남격 합류는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작년 말, 1박2일 5대광역시 특집에서 강호동의 전화섭외로 갑작스럽게 1박2일에 출연한 바 있는 양준혁은 상당히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며 흔쾌히 멤버들과 야외취침으로 1박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멤버들과 스스럼없는 그의 모습덕분에 1박2일의 새 멤버로 섭외되는 게 아니냐는 네티즌들의 의견도 많았지요. 하지만,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염두에 둔, 양준혁은 미국행을 예정했기에, 그의 예능 출연은 가능성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런데 양준혁이 1박2일도 아닌 남자의 자격에 캐스팅이 되었다고 하니 뜻밖에 일이었지요. '야구를 홍보하는 마음으로 어렵게 출연을 결정했다'는 양준혁은 몇 주전 남격에 깜짝 출연해서 첫 인사를 했습니다. 당시 남격은 농촌체험을 했었는데요, 그곳에 전격적으로 합류해, 남격 2주년 축하자리도 함께 하고 농사일도 거들며 분위기를 익혀나갔지요.

그리고 드디어 지난주에 이어 방영된 마라톤 미션 '남자, 다시 달린다'가 본격적으로 참여했는데요, 이 첫미션은 이경규의 몰래카메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원래 이경규의 계획은, 모든 멤버들을 동시에 출발시킨 후 다른 멤버들에겐 이번 마라톤이 몰래카메라임을 알려서 조용히 빠져 나오게 한 뒤, 양준혁만 홀로 완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신입멤버인 양준혁에 대한 일종의 신입생 환영회인 셈입니다. 왕년에 몰래카메라의 주역인 이경규가 의욕적으로 시작한 기획이지요.
20여 km 를 달려야 하는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기란 쉽지 않은데요, 양준혁이 운동선수이긴하지만 발목 부상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그에게도 상당히 버거운 도전이었지요. 하지만, 신입멤버로서 주어진 첫 미션이기에 더구나 다른 멤버들에게 폐가 될 수 없다는 책임감을 안고 양준혁은 꾸준히 달려나갔지요. 그런데 이런 설정은 다소 거북하게 비춰지기가 쉽습니다.

몰래카메라가 유쾌하려면,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이 서로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소재여야 할텐데요, 속는 사람이 곤혹스러움을 느낀다면 지켜보는 시청자의 마음도 편할리가 없습니다. 체력에 큰 부담을 주는 마라톤은, 장시간 상당한 고통과 고뇌를 감내해내야 하는 진지한 운동입니다, 이런 노력을 가벼운 웃음거리로 만들기 십상인 몰래카메라는, 자칫 가혹한 무리수로 비춰져 비난 받을만한 소지가 충분했지요. 소재자체가 환영을 받기 어려운 콘셉트였습니다. 이경규에게 있어 몰래카메라는 독보적인 트레이드마크이고 새멤버에 대한 환영의 의미도 있다고는 하지만 썰렁하면서도 허무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위험한 기획이었던 셈이지요.

그런데 몰래카메라는 당초 계획을 벗어나 의외의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이경규 자신이 불안과 초조속에서 의도와는 다르게 전개되어버렸지요. 당하는 사람에게 돌발이어야 할 몰카가, 몰카를 하는 사람에게도 돌발이 되어버렸지요.

이경규는 사전에 김태원에게만 몰래카메라임을 알렸습니다.최근 수술을 김태원에 대한 배려겠지요. 그리곤 마라톤이 시작된 후에 다른 멤버에게도 차례로 알려 버스에 태울 계획이었는데요, 이 계획에는 큰 오류가 있었습니다. 경기초반 레이스 하는 곳에는 차량진입이 불가능하다는 점과 참가자가 만명이 넘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는 것이었지요.  양준혁을 제외한 멤버들에게 몰카임을 알려야 하는데 도무지 멤버들을 찾을 수가 없었지요. 이경규는 당혹스러워합니다. 자신은 멀찌감치 뒤쳐져 차를 타고 이동하리라는 기대가 그렇게 무너져 버립니다. 뜻하지 않게 4km 이상을 달려야 했던 이경규와 김태원은 뒤늦게 버스에 탑승해서 다른 멤버들에게 연락을 할 방법을 고민하지요. 하지만 멤버들은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렸습니다. 이경규와 김태원은 몰카 사실을 밝히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졌지요. '몰카라고 하지 말고 그냥 끝낼까?'라는 김태원의 말은 이들의 부담을 대변해 줍니다. 결국 8km를 달린 이윤석과 14km를 달린 이정진, 15km를 달린 김국진 그리고 마지막으로 16km를 달린 윤형빈을 합류시키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미 중간지점을 돌아 후반레이스에 돌입했던 이정진, 김국진, 윤형빈에게 몰카소식은 황당한 뉴스였습니다. 기록 경신에 강한 의지를 불태웠던 윤형빈이나, 무릎통증마저 꾹참고 레이스완주에 도전했던 이정진은 당혹스러워 했지요. 특히 수차례 작가에게 몰카인지를 확인했던 김국진은 울컥하기까지 했습니다. 상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녹화가 끝날때까지 별 말이 없었지요. 버스에서 합류한 멤버들의 표정은 모두 밝지 못했습니다. 몰래카메라의 동참자가 아닌 대상자가 된 듯 배신감을 느끼는 모습이었지요. 고생할꺼 다해놓고 허탈할 밖에요. 이런 동료들을 바라보는 이경규와 김태원 역시 머쓱하기는 마찬가지였지요.

몰카의 중요한 볼거리 중 하나는,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똘똘 뭉쳐 팀웍을 발휘하는 모습일텐데요, 이번 몰카는 다른 멤버들조차 알지 못하고 나중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 단체 몰카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몰카의 주동자인 이경규는 안절부절하는 모습이었지요. 화가난 동생들을 달래기에 나섰지만 쉽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몰카의 주동자로 희희낙낙하며 양준혁을 지켜봐야 하는 입장인데, 자신이 더 힘에 겨워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시종일관 계속 됐지요. 처음에는 몰카사실을 전해줄 방법이 묘연해져서 급격히 당황하더니, 버스에 타지도 못하고 억지로 레이스에 동참하는 모습도 그렇게 웃길 수가 없더군요. 더구나 마지막에 이경규는 양준혁에게 몰카임을 밝히는 것도 두려워했습니다. 그 역할을 떠넘기고 싶어했지요. 대한민국 몰카의 전설 이경규마저 부담스러운 몰카였습니다.

이렇듯 몰카의 주체자가 돌발상황 속에서 오히려 힘겨워하다보니, 가해자라는 인상은 사라져버렸습니다. 만약 이경규가, 거구를 이끌고 발바닥 통증과 발목통증을 이겨내며 레이스에 나서는 양준혁을 희희낙낙 지켜보기만 했었더라면, 시청자로서 이경규를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곱지 않았을 겁니다. 마라톤이라는 고된 운동을 몰카로 몰아넣기에는 과한 감이 있었지요. 당초 계획대로 깔끔하게 성공 했다면 이경규는 상당한 비난의 후폭풍을 직면해야 했었을텐데요, 어설프고 어딘가 부족해보이는 성공이라 오히려 이경규는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며 웃음까지 주는 복을 안게 되었습니다.
비록 연출이었지만 마라톤 완주의 순간, 종착점을 힘겹게 통과하는 김태원의 연기가 압권이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양준혁은 돌아서서 눈시울을 붉혔지요. '이 사람들 진짜구나' 양준혁은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이경규의 마음은 얼마나 민망했을까요.

이렇듯 어설프게 진행된 몰래카메라는 돌발에 돌발을 낳으며 잔재미 넘치는 리얼버라이어티가 되고 말았습니다. 역시 예능은 돌발이고, 남을 속이는 자의 속이 편할 수가 없을때, 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설펐기에 오히려 흥한 몰래카메라였습니다. 다같이 힘들었던 이번 몰래카메라를 통해 양준혁도 남격의 멤버로서 끈끈한 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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