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on

7살 아들과 드라마보다가 연기에 도전한 사연



7살 아들이 5살 딸에게 투정을 부린다.
'나하고 놀자~''나하고 놀자니까...' '엄마~ 얘가 자꾸 나랑 안놀아줘~'
아들의 투정에 엄마의 한숨이 깊어진다. '아... 진상이 따로 없네'

아빠인 나의 가슴도 미어진다. 그래서 아들을 조용히 불러서 훈계했다.
'사람은 원래 뭘 해달라고 자꾸 매달리면 오히려 해주기 싫어져.. 그냥 가만히 너 할꺼 하고 있으면 상대는 어느새 너랑 놀게 될꺼야' 역시 7살에겐 무리였나 보다. 아들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
요즘 우리 부자의 취미는 드라마 '스파이명월' 시청이다. 아들은 에릭이 무지 마음에 드는가보다. 스파이명월을 본 이후 자꾸 극중 강우(에릭 분)의 말투를 흉내낸다. 언젠가 극중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는데 강우가 실컷 두드려 맞았다. 아들은 이 현실이 몹시도 싫었나보다. '아빠, 강우는 왜 싸움을 못해?' 풀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렇게 잠이 든 녀석, 다음날 활짝 웃는 얼굴로 말한다. '아빠, 어제 꿈속에서 강우가 정말 멋지게 싸웠어, 강우는 역시 싸움도 잘해'

극중에서 북한 공작원 명월(한예슬)은 한류스타 강우를 포섭해서 결혼을 하고 자진월북시켜야할 임무를 맡고 있다. 이 작전은 명월의 상관 최류(이진욱)에 의해 지휘되고 있는데, 진작부터 명월을 사랑해온 최류는 이러한 작전을 수행해야만 하는 현실이 괴롭기만 하다. 그리고 이러한 최류의 마음을 모르는 명월은 서서히 강우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드라마를 보고나서 아들에게 왠만한 논술문제에 준하는 질문을 던져봤다. '명월은, 최류 하고 강우 중 누굴 더 좋아할까?' 아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응, 최류' 그 자신감 넘치는 대답의 이유가 궁금했다. 분명 명월은 최류에게 가족애 비슷한 진한 감정을 가지고 있긴 하다. 그래서 그럴듯한 대답을 기대했건만.. '응, 명월이가 강우에게 총을 겨누었잖아'


그렇다. 아들은 아직 표면적인 행동에만 주목할 뿐이었다. 내 반응이 이상했는지 아들이 아니냐고 캐묻는다.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총을 겨누어야만 하는 상황을 7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도통 모르겠다. 아직 표면적인 행동에만 주목하는 아들을 생각하다 문득 표면적인 행동을 보여주고 싶었다.
****
난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이엄마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나랑 놀아줘, 나하고 놀자니까' 내가 방방 뛰면서 마구 투정하는 액션연기를 펼치자 아들은 부끄러워 못참겠다는 듯 멀리 도망가버렸다. 자신의 행동이 재연되는 것이 많이 민망한 듯 했다. 창피해서 깔깔깔 웃어대는 아들을 다시 데려와서 똑똑히 보라고 했다. 두번이나 더 도망간 아들을 기어이 데려와서 액션연기를 또다시 선보였다.

(아빠) 나랑 제발 놀아줘  (엄마) 싫어, 귀찮아 (아빠) 놀아줘 제발 (엄마) 싫다니까 저리가 (아빠) 흥, 나 혼자 놀아야지, 그리고 난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노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엄마가 슬쩍 다가와 놀고 있는 내 주변을 맴돌다가 말했다 '같이 놀~자' 아들의 얼굴에 이채를 띄었다. 뭔가 이해한 바가 있는가 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줬다. '자꾸 놀아달라고 하면 놀아주기 싫어져.. 그 대신에 혼자 알아서 잘 놀고 있으면 딴 사람도 같이 놀고 싶어진다니까'

더이상 아들은 동생한테 같이 놀자고 조르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난 아내의 발연기를 지적했다. '왜 이렇게 연기를 못해, 완전 발연기였잖아, 내가 혼자 놀고 있는 대목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표정에는, 자유로운 영혼을 바라보는 동경과 시샘을 담고 있어야지, 도대체가 연기에 철학이 없어' 

그런데 며칠 후, 아들이 동생한테 또 투정을 부린다 '여기에 스티커 좀 붙여봐' '야~아~ 스티커 좀 붙여 보라니까'  그 아들에게 내가 조용히 타일렀다. '자꾸 해달라고 하면 안해주고 싶어진다고 했잖아' 그러자 아들이 너무도 당당하게 대답한다. '나 놀아달라고 안했어, 진짜야, 나 인제 놀아달라고 안한다구'

교육은 이제 시작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