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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예능&오락

불후의명곡2, 벌써 '명곡'이 바닥났나




불후의 명곡2(이하 불명)의 부제는 '전설을 노래하다'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 취지는 가요계전설을 모셔와, 그들의 '불후의 명곡'을 후배가수들이 재해석해 부름으로써 세대를 초월한 우리네 감성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비슷한 포맷의 나는가수다와 함께 불후의 명곡2은 지금까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숨은 명곡들을 오늘의 대중에게로 이끌어내 우리네 가요문화를 풍요롭게 해주었습니다. 세월따라 잊혀졌던 숱한 명곡들이 다시금 세상의 빛을 보면서, 장년층은 노래의 추억과 시절의 감성을 되새길 수 있었고, 세대간에 단절이 극심한 요즘 세태에 소통의 접점을 마련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불후의 명곡2는, 선물이 되어주는 명곡들로 듣는 귀를 즐겁게 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어제 방송된 불명의 전설은 조영남이었습니다. 조영남은 가수이자 화가이면서 저술가 그리고 목사안수까지 받은 신학도로서 다재다능한 사람이지요. 화가로서 수십회의 전시회를 가졌고 생업보다 그림이 더 재밌다고 할 정도로 왕성한 창작욕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한 10권정도의 저서를 발표하기도 했지요. 다방면에서 재능을 펼치고 있는 조영남이긴 하지만, 정작 유명인의 첫걸음이었던 '가수'로서의 조영남은 히트곡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불명의 전설로 조영남을 소개한 신동엽조차 관객들이'대단한 가수긴 하지..그런데 7명의 가수가 부를정도의 히트곡이 있었어?'라고 말한다며 재치있게 꼬집어 주었는데요, 실제로 조영남 하면 떠오르는 곡은 화개장터, 도시여 안녕 이외에는 이렇다할 히트곡이 없지요. 조영남 스스로도 신동엽의 소개에 뒤돌아 설 정도로 불편한 진실이었습니다.

이날 7명의 가수가 무대에 올린 노래 중 세곡이 번안곡이었습니다. 이정이 부른 내고향 충청도는 'the banks of the ohio'를, 성훈이 부른 딜라일라는 톰 존스의 'delilah'를, 강민경이 부른 물레방아 인생 또한 CCR의 'Proud Mary'를 번안한 곡이었지요. 조영남 스스로도 자신이 번안곡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했듯, 세간에선 번안곡 전문가수라는 비아냥이 있기도 했는데요, 제작진은 조영남의 섭외를 놓고 '우리 가요계가 발전하는 과도기에 외국의 번안곡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우리 국민들이 원곡과는 또다른 분위기의 이런 노래들을 들으면서 우리의 감수성으로 소화해 우리의 노래에 영향을 미친 만큼 한번쯤 조명할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번안곡을 자신의 노래라고 표명할 수 있으려면, 듣는 이로 하여금 원곡이 잊혀질 정도로 그 노래에 대한 대중 장악력이 있어야 겠지요. 그런데, 조영남의 번안곡은 그가 불러 유명해졌다기보다는 원곡자체로 더욱 유명한 곡입니다. 이날 가수 이정은 강민경과의 일화를 소개했는데요, '물레방아 인생'이란 노래에 대해 '이 노래 그 노래랑 진짜 똑같지 않아요 이거 표절 안걸려요'라며 생소한 반응을 보였다고 하지요. 딜라일라 역시 조영남의 노래이자 한국 가요계의 명곡으로 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긴 마찬가지입니다.

노래의 규정에 대한 부분뿐만 아니라, 조영남의 태도도 보기에 불편했습니다. 정해진 틀에 맞추지 않는 그의 행동방식은 익히 유명하지만, 시청자를 상대로한 프로그램의 출연에서 시청자를 위한 배려가 아쉬웠습니다. 자신의 노래를 불러준 후배가수의 무대를 평하며 그는 정작 후배가수가 아닌 뒤쪽을 향해 이야기를 했지요. 시종일관 이방향 저방향 뒤를 돌아보며 뒷 사람과 대화하는 듯이 평을 내놓았습니다. MC신동엽과 무대를 장식한 후배가수 그리고 심지어 시청자까지도 그의 뒤통수를 보고 심사평을 들어야할 수준이었지요. 강민경의 노래를 듯고, 의자에 다리를 올려 쭈그려 앉아 심사평을 하는 모습에 신동엽은 '여성을 사랑하는 조영남이 가장 기분 좋을 때 하는 행동'이라며 재치있게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테이블에 엎드려 노래를 듣거나, 앞쪽 방청석에 앉아 있는 소녀를 옆자리에 앉혀놓고 질문을 던져 소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지요. 소녀를 귀엽게 여기는 자신의 감정만 신경쓰느라 찡그리며 울듯한 아이의 감정은 개의치 않아 보였습니다. 또 뒷자석의 방청객과 나누는 사적인 대화 역시 줄곧 마이크를 대고 말함으로써 MC를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습니다.

노래부터 태도까지 조영남은 지난주 전설이었던 송창식과 여러모로 비교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노래로 첫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송창식은 화려하며서도 담백한 기타솜씨와 겸손한 태도 그리고 구수한 자신만의 가창으로 방청객을 들뜨게 만들었던 반면 조영남은 자신의 무대조차 선보이지 않았습니다. 명곡의 깊이와 감동을 새삼 일깨워준 송창식과 대조적이었던 조영남인데요, 후배가수의 노래를 넉넉하고 푸근한 웃음과 재치있는 입담으로 가요계 대선배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송창식과는 달리, 조영남은 매 무대마다 세계에서 1등이라는 똑같은 레퍼토리의 립서비스로 일관하거나 뒷좌석 관객과의 환담에 더 신경쓰는 모습이었지요.

한 많고 곡절 많았던 우리네 현대사를 관통했던 숱한 명곡들에는 우리만의 감성과 깊이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조영남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숱한 명곡들이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곡절 많은 시절을 견뎌낸 노 가수의 품격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송창식처럼 시절의 아픔탓에 감방을 다녀오고 숱한 노래가 금지곡이 될 정도로 파란만장하지는 않더라도 당당히 자신의 노래로 시절을 풍미했던 명곡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텐데요, 이번 조영남 편은 지끔까지의 불명에서 가장 불편했던 전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