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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드라마&시트콤

해를품은달, 예고편보다 못한 밋밋한 본방




지난주 해품달은 난데없는 키스씬 파동을 겪은 바 있습니다. 16회를 앞둔 예고편에서 키스씬을 내보냈으나 정작 본방에는 나오질 않자 많은 애청자의 원성이 있었고 이에 제작진은 다음편을 기약하며 애교스런 석고대죄를 표하기도 했었지요. 심지어 MBC 홈페이지 메인에도 한가인과 김수현의 키스씬이 떡 하니 중심을 자리할 정도로 이번 17회는, 달달한 애정씬을 기다려온 애청자들을 기대에 부풀게 만들었습니다.

  (MBC홈페이지 캡쳐)

단지 키스씬 뿐아니라 이번 17회는, 오랜시간 기억상실의 늪에 빠져 지지부진했던 스토리가 급물살을 타며 대반전이 예상됐던 상황이었지요. 지난회에선, 기억을 회복한 상태에서 이훤과 조우했음에도 차마 내색을 하지 못하고 침묵해야만 했던 연우와, 그런 연우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며 돌아서는 이훤의 모습이 애달펐고, 뒤늦게 모든 진실을 깨닫고 절규해야만 했던 이훤의 깊은 상심이 진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오열하던 이훤의 애절한 감정은 17회가 시작되면서 실종된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에 얽힌 진실로 인해, 이훤이 다칠까 두려워 차마 침묵해야만 했던 연우의 슬픔 역시 실종됐습니다. 너무도 차분하게 연우를 부르는 이훤, 너무도 쿨하게 자신의 정체를 인정하는 연우, 전편에서 활활 타오르던 감정은 너무도 밍밍하게 식어버렸지요.

'이제야 알아보았다'며 자신을 나무라는 훤, 고개숙여 눈물만 흘리고 있는 연우, 죽음을 넘나드는 모진 운명을 이겨내고 8년만에 서로를 인지한 애잔한 감동의 순간은 너무도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때 영의정이 보낸 자객의 습격이 이어지고, 왕이 몸소 칼을 들고 피가 튀는 대결을 펼치는데요, 이 와중에 양명은 연우를 데리고 피신하지요. 그런데 목숨걸고 검술을 펼치는 왕을 바라오는 연우의 얼굴은 너무도 평온해보였습니다. 그렇게 연우는 왕을 내팽겨치고 딴 남자의 손에 이끌려 산 속 깊은 사찰까지 따라갑니다. 8년만의 조우를 무색하게 만드는 설정이지요.  동시에 양명은 민폐캐릭터가 됐습니다. 모든 걸 왕에게 양보하고 연우에 대한 연정마저 희생할 수 밖에 없는 애꿎은 운명을 타고난 양명이건만, 연우와 훤의 감정선이 극한으로 치달아야할 결정적 순간에 찬물을 끼얹는 연출이 아쉽습니다. 
이번 들어 양명의 칼에 묻은 피를 보여주며 훤과 양명의 극한 대립을 암시했던 예고편에 비해서도 훤과 양명의 검술대결 역시 싱거운 면이 있습니다.

전체적인 드라마의 흐름도 산만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종영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극 전개가 상당히 바빠보이지요. 엇갈렸던 두 사람이 모진 난관을 헤치며 기어이 만났고, 이제는 이런 비극을 만들었던 대왕대비 일파에게 통쾌한 응징을 행해야 할 시점인데요, 하지만 오히려 대왕대비 쪽에서 작금의 돌아가는 사태를 줄줄 꿰뚫더니 오히려 이훤을 찾아와 줄줄이 상황을 늘어놓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극의 빠른 전개를 위한 고육지책이겠지요. 그동안 기억상실 부분에 과도한 편성을 하다보니 후반 전개가 빠듯해는 부담이 생겼습니다.

이렇듯 예고편에선 절절한 애정씬과 극한 긴장을 보여줬지만, 막상 본방에서는 차분한 애정씬과 허무한 대결, 그리고 아쉬운 연출이 이어졌습니다.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 제인구달은, 소녀시절 책을 통해 만난 '타잔'과 영화를 통해 만난 '타잔'이 너무도 달라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상상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만 영상은 사람을 구속하기도 하고 실망시키기도 하는가 봅니다. 이번 17회는 무엇을 상상했건, 상상했던 그 이하에 머물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