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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드라마&시트콤

착한남자, 알면서도 속아주고 싶은 유혹

 

 

 

드라마 착한남자는 인간 내면의 욕망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옛 애인의 의붓딸에게 접근한다는 설정은 지극히 막장스럽지만, 그 과정에는 인간 심리에 대한 치열한 통찰이 담겨있지요, 그래서 흥미롭습니다.

한재희(박시연 분)는, 아비에게 장기를 이식해 주려는 의붓딸(문채원 분)이 보는 앞에서 남편에게 노골적으로 닭살 멘트를 날립니다. '이 아이(의붓딸)는 당신의 미래이니, 건강을 희생할 수 없고 자신은 회장님 없는 세상에 대한 미련이 털끝만큼도 없다며 자신이 대신 공여이식을 하겠다고 말이지요. 이 말에 의붓딸은 헛웃음을 참아야 했고, 주변 인물들은 민망함을 감추려 애써야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 서회장은 말없이 온화한 눈빛을 하고 맙니다.

 

 

이런 한재희에게 서회장은 백화점 지분을 넘겨주려하지만 한재희는 오히려 모욕당했다는 듯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남들이 어찌 보든 자신은 오직 당신의 가족일 뿐이기에 이러는 거라며 순정만화 속 아련한 눈빛을 연출합니다. 노회한 서회장은 이 민망스런 고백 앞에서 눈을 껌벅이며 감정을 추스려야 했지요.

그동안 내연녀 신분이던 한재희가 비로소 정식 부인으로 세상에 공표된 계기였습니다. 서회장의 냉혹한 경영철학을 보면 그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알면서도 속아주고 싶은 한재희의 눈물 앞에서 서회장은 자신의 인간에 대한 냉정한 잣대를 내려놓고 말지요.

 

알면서도 속아주고 싶은 유혹은 한재희만의 몫이 아니었지요. 강마루(송중기 분)의 서은기(문채원 분)에 대한 유혹이야말로 작업의 정석에 어울리는 섬세하면서도 과감한 유혹이었습니다.

계획적으로 서은기에게 접근했던 강마루는 그녀를 대신해서 죽을 뻔했다가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는데요, 아비만큼이나 냉정한 서은기는 강마루에게 낚일까 두려워 차갑게 말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때문에 그런 미친 짓을 했어요? 그러다 잘못되면 누구한테 무슨 덤탱이를 씌우려고?' 하지만 강마루는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감춘 채 태연하게 그녀를 무시합니다. '됐고, 내 자유의지였고, 이 시간 이후 서로 얽힐 일 없는 거고, 이상 정리 끝, 정리 됐으면 그만 나가줄래?'

 

 

늘 수그리는 사람에게 익숙했기에 도도할 수 있었던 서은기는 이 낯선 남자가 자꾸 생각이 나지요, 결국 서은기는, 비서를 통해 전달한 선물마저 마다하고 조용히 퇴원해 버린 강마루를 찾아 가지요. 그가 사는 판자촌의 남루함에 문화적 충격을 받은 서은기는 마음껏 강마루를 비아냥거렸지만, 강마루의 눈빛엔 신비로운 무관심밖에 안보였습니다. 자신의 도발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귀찮은 듯 돌아서 버리는 강마루의 태도에 서은기는 자존심의 상처를 받고 강마루를 따라가는데요, 상처 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서은기는 다짜고짜 강마루의 차에 올라탑니다. 마침 가출한 동생을 찾아 동해바다로 급히 떠나야 하는 강마루의 상황은 이제 연출이 아니라 현실이 됐는데요, 나 바쁘니 내리라는 강마루의 호통에 서은기는 분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렇게 급하면 가요, 가면서 얘기합시다' 강마루가 이후 몇 번이나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줬지만 서은기는 이미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 강마루는 의외의 말을 던지지요, '아까 당신보고 살짝 설렜어요, 그쪽 같은 스타일 사고 이전엔 관심도 없었는데..' 이런 강마루에게 서은기는 목소리를 높여 짜증냈지만, 이는 그녀 마음에는 일기 시작한 파도 같은 설렘을 감추는 행위겠지요, 이 후 몇 시간 동안 계속된 침묵, 좁은 공간에서 말없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한참을 달리는 동안, 서은기는 살짝 살짝 강마루를 훔쳐봅니다. 하지만 강마루의 눈빛엔 좀 전에 했던 말과 달리 어떤 미련이나 빈틈도 없이 고요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동해바다, 강마루는 서은기에게 돌아갈 차편을 알려주곤 허름한 술집으로 향하지요, 배다른 여동생의 처참한 가족상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의붓아빠와 매맞으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친엄마, 이를 처절하게 뜯어 말리는 송중기의 모습에서, 한 남자의 색다른 밑바닥 인생에 동화되고 말지요, 친엄마에게 버림받은 배다른 여동생이 비참하게 울자, 한마디 위로의 말 대신 휴지를 건네고 조용히 라디오를 틀어주는 강마루의 섬세함에선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근간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도통 애매한 깊은 눈빛이 있었지요.

 

 

서회장 밑에서 25년동안 일했던 안변호사는 한재희에게 자신의 마음을 진작부터 들켰습니다. 여자란 남자의 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마련인데요, 하지만 서은기는 도무지 강마루의 진심을 알 수 없기에 그 수수께끼같은 매력에 더욱 빠져들 수 밖에 없겠지요. 떠나는 강마루에게 서은기가 말합니다. '그쪽이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또 만납시다, 우리.. 내일도 모레도'


이런 서은기의 제안에 강마루는 대답 대신 그녀가 기분 상하지 않을 만큼의 미소만 살짝 비치고 말지요, '착한남자'의 여자에 대한 배려는 이 정도면 족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