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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스타&연예

추적자, 몰락의 전설로 남을 명장면

 

'강동윤은 내가 잡는다, 그 놈을 잡으려면 그 놈보다 더 나쁜 놈이 돼야 한다'

 

가장 비참하게 몰락하는 길은, 가장 화려할 때 몰락하는 것이겠지요. 강동윤(김상중 분)의 몰락이 그러했습니다. 극중 이 땅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서회장이 이런 말을 했었지요. '막상 가지면 별것도 아니다' 이미 가져본 사람에게 권력은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그 역시 권력을 붙잡기 직전엔 가슴 떨리는 설렘에 전율 했을 것입니다. 쟁취한 권력보다 쟁취를 코앞에 둔 권력이야 말로 가장 달콤하고 가장 황홀한 절정인 이유입니다. 강동윤은 바로 그 황홀한 절정의 순간에 가장 비참하게 몰락할 것입니다.

 

어쩌면 강동윤은 이 비참한 몰락을 예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이발소에서 백홍석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강동윤은 내내 우울해 보였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유일한 아킬레스 건이었던 백홍석이 이 땅을 떠나겠다며 돈까지 챙겨간 마당입니다. 우환거리도 없앴고, 대통령 당선도 코 앞인 상황인데도 강동윤의 표정은 너무 어두웠지요.

 

이발소에서 백홍석의 주먹에 맞을 때만 해도 강동윤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헌데 그 백홍석이 이제 포기할테니 돈을 내놓으라고 했을때 강동윤의 얼굴엔 오히려 짙은 의혹이 확연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지닌 강동윤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늘 기민하게 대처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 백홍석 앞에서 그는 혼란스러워 보였지요, '너라면 포기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백홍석은 계좌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네며 손가락 두개를 펴보였습니다. 20억.. '백홍석.. 돈으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서회장이 강동윤을 극단적으로 경계하는 이유는, 강동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너무도 똑같은 인간이기에 절대로 믿을수가 없었지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본성에 대해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강동윤은 백홍석에게서 자신과는 극단적인 반대의 모습을 봤지요. 계란으로 바위를 치더라도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인간, 딸아이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법정에 총을 들고 나타난 인간, 모두가 두려워하는 상대라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질 수 있는 인간, 백홍석이 그런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언젠가 백홍석이 강동윤에게 총을 겨눴을때도 강동윤은 두려워하지 않았었습니다. 우직한 이 남자는 자신에게 복수하는 것보다 딸에 대한 진실을 더 소중히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당시 강동윤은 백홍석의 총부리를 노려보며 그를 마음껏 농락할 수 있었습니다. 

 

헌데 이 백홍석이 변했습니다. 제대로 반항조차 못하던 절대폭력 앞에서 상식이 무너지고 인간의 근간마저 농락당했던 백홍석은 기어이 역전의 해답을 찾아냈지요, 더 이상 울지 않겠다고.. 더 이상 분노하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던 백홍석, 그는 강동윤을 잡기 위해 강동윤보다 더 나쁜 놈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강동윤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용서가 아니라 포기다. 니가 이겼다. 강동윤'이라고 말할 수 있었지요. 상식의 길이 아니라면 쉬운 길도 마다했던 백홍석의 이러한 변화에 강동윤은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낍니다.

 

큰 마차가 먼길을 가다보면 깔려죽을 벌레도 있기 마련이라고 차갑게 말했었던 강동윤인데요, 그는 그런 벌레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벌레인 줄 알았기에 실컷 농락해왔던 그 백홍석이 오히려 뒤통수를 치지요, '암컷! PK준 핸드폰을 봤어. 당신 아내, 대한민국 대통령의 부인이 암컷' '푸들.. 서기자가 말해줬어, 집에서는 너를 푸들이라고 부른다고.. 왈왈.. 밖에서는 근엄하게 나라를 걱정하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고 다니는데, 집에서는 푸들과 암컷... 잡종이라니..'

감정을 담지 않고 어눌하게 질러대는 백홍석의 염장에 냉혹한 강동윤은 기어이 무너집니다.

 

불필요한 과시욕에 취미가 없었던 강동윤은 그답지 않게 백홍석에게 비아냥거리지요.
'유감이야, 그래 내가 죽였어 백홍석의 딸 백수정양을... 너하고 절친한 의사 윤창민을 만나라고 했어, 30억을 줬어 바로 다음날 해결하더군' 백홍석이 얼마나 하찮은지를 보여주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말을 해주던 강동윤의 얼굴에선 비웃음 대신 불안감이 비쳐집니다. 이미 강동윤은 제 꾀에 스스로 넘어갔음을 느낀거지요.

결국 두 사람의 대화내용은 몰래카메라를 통해 세상에 공개됩니다. 이제 대선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는데요, 강동윤의 비서 신혜라는 이런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결코 포기하지 않지만, 이미 아버지의 이발소를 나올때부터 맥이 빠진 강동윤은 의욕이 없어 보입니다. '혜라야, 몇시간을 버텨서 당선이 돼도, 논란은 사라지지 않을꺼야..'

하지만 신혜라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지요, '논란과 의혹이 쌓이고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면 국민들은 잊을 겁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국민들의 대답은 무엇일까요..실제로 우리의 현실에서도 국민들은 권력자의 많은 의혹을 품은 채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밝혀진 것도 없고 확인된 것도 없지요.

 

그 동안 이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스릴과 함께 우울함을 안겨줬습니다. 절대 권력 앞에서 너무도 무력한 소시민, 욕망 앞에선 쉽게 무너지는 인간성, 상식도 없고 염치도 없고 신뢰도 없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욕망때문에 알면서도 권력자에 속고 사는 우리의 위선적인 자화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요.

이들은 그저 생업에 얽매인채 권력자가 언론을 통해 전해주는 창문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며 고난한 하루하루를 이어갈 뿐입니다.

 

바로 그렇기에, 이들이 그 생업을 잠시 유보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아나서는 장면이야말로 진정한 반전이었습니다. 가게문을 걸어 잠그고, 시장 가판을 접고, 사무실을 뒤로 한 채 이들은 저마다의 투표소로 향했습니다. 이 드라마가 그동안 끝없이 던져온 질문, 절대 권력 앞에 소시민은 그저 무력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드라마의 해답이겠지요, 과연 국민을 농락한 자는 몰락하게 될까요, 가장 화려한 순간에 가장 비참하게 무너지는, 전설과도 같은 몰락을 이끄는 주역은 백홍석 한사람의 몫이 아닌 국민의 몫이라는 것을 드라마는 확고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