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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드라마&시트콤

착한남자, 막장을 뛰어넘은 세 가지 눈빛

 

 

 

 

새엄마의 옛애인과 사랑에 빠진 재벌의 상속녀, 그 여자의 마음을 단숨에 훔쳐버리는 옴므파탈, 그리고 이제 재벌의 상속녀는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게다가 그 옴므파탈의 오랜친구 역시 재벌가의 숨겨진 자식이었는 설정까지.. 드라마 착한남자는 막장의 요소를 두루 갖췄습니다.
그럼에도 드라마에는 막장을 넘어서는 품격이 있지요, 그건 인간의 내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엿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격정 대신 고요한 시선으로 그 내면을 펼쳐내는 송중기의 명연기가 있습니다.

 

한재희(박시연)에 대한 자신의 덧없는 집착을 직시하게 된 강마루(송중기)는 한재희에 대한 관심을 상실해 버립니다. 애정과 증오는 관심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서로 통합니다. 그래서 한재희에 대한 더이상의 증오나 애정도 남아있지 않게 되지요. 그래서 십수년을 함께 했던 지긋지긋한 연정을 눈물과 함께 흘려버릴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한재희에게 가고자 이용하했던 서은기에 대한 통렬한 죄의식을 느끼게 되지요.

 

 

바닷가에서 조우한 서은기와 강마루, 서은기의 진심 앞에 면목이 없는 강마루는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며 서은기를 끊어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한재희와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는 서은기는 여전히 강마루를 놓을 수 가 없었지요. 그래서 냉정한 척 외면하는 강마루를 끌어 안으며 함께 할 미래를 애원합니다. 하지만 강마루는 '재희누나 찾길 위해서라면 내가 못할 일이 있었을 것 같냐'는 말로 서은기를 단호히 거부하지요,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서은기의 시선이 흐려지는 순간, 문득 서글픈 눈길을 보이는 강마루인데요, 다시금 서은기가 마지막 희망으로 그의 눈길에서 진심을 찾아 보려하자 스산한 눈길로 돌변하는 송중기의 셈세한 연기는 압권이었습니다.

강마루의 스산한 눈빛만을 확인한 서은기는 끝내 절망할 수 밖에 없었지요, 맥없이 돌어서는 서은기의 뒷모습조차 외면하는 강마루의 불안한 눈빛은, 스스로의 진심을 부정해야 하는 남자의 외로움이 가득했습니다.

 


절망속에서 서울로 향하던 서은기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고 소식을 접하는데요, 다시 마음을 추스려 가던 길을 달리던 서은기는 급작스레 차를 돌려 강마루에게로 향하지요. 자동차로 질주하던 두 사람은 터널에서 마주치게 되고, 서은기는 중앙선을 넘어 강마루에게로 돌진합니다. 파국을 향해 달리는 서은기는 고통과 절망의 격정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서은기의 미친 질주를 강마루는 미소로 받아냅니다. 미친 짓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랑의 명백한 증거겠지요, 한재희에 대한 십수년의 미친 집착을 극복하고 남겨진 것이 없는 줄 알았던 강마루는 이렇듯 삶의 증거를 서은기에게서 발견한 채 두려움 없이 서은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고속 질주하는 두 차량의 정면충돌임에도 드라마 답게 두 사람은 생존해 버립니다.

1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서은기는 병실에서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마루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지요. 뺀질뺀질한 차림새와 말투로 약점 있는 사람을 등쳐먹는 냉혈한으로 말입니다. 숱한 사람들로부터 원한 사는 것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은 채 막나가는 강마루를 보며, 그의 절친은 그가 인생을 포기했음을 직감하지요.

 

 

그런 강마루에게 서은기가 나타납니다. 꼬마들과 어울려 벽에다 낙서를 하는 여인, 강마루라는 글자를 제대로 적지도 못하면서 강마루라고 읽는 이상한 여자의 등 뒤에서 강마루는 가던 길을 멈춥니다. 인생의 의미를 포기케한 사람,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사람의 뒷모습을 봤지만 강마루는 섣불리 다가서지 않습니다. 그저 말없이 그녀의 틀린 글씨를 고쳐주고는 그녀를 고요히 바라볼 뿐이지요. 자신의 이름조차 잊었노라 해맑게 웃던 그녀가 강마루를 보더니 살짝 눈물을 비쳤습니다. '우리 되게 많이 사랑했던 사이.. 맞죠?' 묻는 서은기의 눈이 젖어들자 고요하고 담담하기만 했던 강마루의 눈빛도 젖어들기 시작합니다.

 

 

강마루가 단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랑했던 사이', 잃고 나서야 살아가기 힘들정도의 고통을 알게 해준 서은기를 강마루는 차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서 진심을 요구하는 서은기를 거부하던 강마루의 복합적인 눈빛, 질주하는 차 안에서 서은기의 파국을 받아들이는 강마루의 희미한 미소, 운명적인 해후 앞에서 오히려 차분해지는 강마루의 젖은 시선까지.. 서은기를 바라보는 강마루의 시선에는 흔한 막장드라마에선 찾아보기 힘든 절제와 품격이 있습니다. 착한 남자가 식상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