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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On/드라마&시트콤

드라마의제왕, 이 남자의 매력적인 차별

 

 

앤서니김(김명민)은 사람을 제대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결코 논리로 설득되지 않지요, 설득되고 싶어야 비로소 설득됩니다. 그래서 그는 상대의 욕망을 들여다보고는 그 욕망을 끄집어내지요, 승진에서 밀려난 방송국 간부에게는 타도해야 할 대상을 보여줬고, 숭고한 꿈을 그리며 사는 이고은(정려원)에겐 꿈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위해 앤서니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지요.

 

헌데 앤서니는 사람을 차별합니다. 사람을 프로와 아마츄어로 구분하여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지요, 톱스타 강현민(최시원)을 캐스팅할때는 대본이나 작품은 아예 운운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돈을 이야기하지요, 선불로 즉시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어제 방송에서 강현민이 제작발표회를 앞두고 자존심이 상했다며 대본 보이콧을 선언하자 설득보다는 힘으로 찍어누르지요, 드라마 집어치우고 같이 죽던가 같이 살던가 알아서 선택하라며 벼랑끝 협박을 해버립니다. 극중 강현민은 스스로의 긍지따위는 없이 겉멋만 부리는 캐릭터다보니 그의 공포를 자극한 셈입니다.

 


반면 또다른 톱스타 성민아(오지은)를 캐스팅할때는, 그녀가 예전 자신을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섭외를 부탁하는 제작사 사장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을 느끼지도 사랑을 기대하지도 않던 옛 연인으로서 차갑고 냉냉하게 대본을 건넬 뿐이지요, 한번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연락하라고.. 웬만한 것은 다가진 톱 여배우는 그래서 자신이 갖지 못했던 남자에게 다시 한번 미련을 품어보게 됩니다.

 

그런데 앤서니의 이고은 작가를 대하는 방식에 변화가 일었습니다. 3년전 앤서니에게 그녀는 한낱 소모품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당시 메인작가가 대본 수정을 거부하자 보조작가였던 그녀에게 거짓말을 해서 대본을 바꾸게 하더니 일이 끝나자 안면을 몰수해서 그녀의 꿈을 산산조각냈었는데요, 3년만에 다시 만나서도 당연하다는 듯 대본 수정을 강요했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그녀를 강제했던 앤서니지요, 헌데 어느덧 앤서니는 이고은에게 자신의 가치와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냥 그녀가 세상에 맞서 스스로 일어서도록 지켜봐 줍니다.

 

 

여주인공 성민아가 이고은작가와의 만남을 요구하자 앤서니는 두 사람만의 대화를 갖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데요, 앤서니는 이 자리의 의미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본의 작품성을 높이 사지만 자신의 연기분량을 늘려야 한다는 여배우의 요구에 이고은은 절망하지요. 이고은은 앤서니까지 오해합니다. 대본 수정을 하지 않기로 이미 약속했던 앤서니가 여배우를 내세워 대본을 바꾸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한거지요, 하지만 앤서니는 이런 이고은에게 호통을 칩니다. '싸워, 당당히 맞서 싸우라고, 니 대본 지키고 싶으면 싸워서 이겨, 대신 너 혼자 싸우는 거야, 누구도 도와주지 않아, 그래서 작가는 외로운 직업인거야' 감독과 싸우고 제작자와 으르렁대고 방송국의 간섭을 받고 배우와도 끝없이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 작가의 숙명 앞에서 앤서니가 이고은에게 건네줄 최고의 배려는 그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것이겠지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야할 프로의 세계를, 앤서니는 이고은에게 펼쳐줬습니다. '프로도 아마츄어도 실수를 해, 헌데 아마츄어는 세상을 탓하고, 프로는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지, 아마츄어는 감히 생각도 못하는 여유'
앤서니가 말한 '여유'라는 말이 이고은을 잡아 끌었습니다. 무언가 절대적인 선을 정해놓고 그 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스스로의 삶을 되짚어보지요. 그 신념이란 것이 자신의 삶은 물론 자신의 작품마저 경직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이고은은 그토록 거부했던 대본 수정에 나섰습니다.

 

작가 본인에게는 물론이고, 방송국 국장까지 움직여 압력을 행사했던 성민아의 요구를 대차게 거부했던 이고은이 갑작스레 수정대본을 가지고 오자 성민아는 의외라는 눈빛을 보내지요, '그렇게 당당하더니 겁이 났었나보지요?' 이에 이고은은 수줍게 대답합니다. '네, 겁났어요, 내가 삶의 여유를 잃을까봐..' 이 말을 남기고 떠나는 이고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성민아의 눈빛엔 이채가 담겼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다시 보는 것은 순간이겠지요.

 

 

이렇듯 앤서니는 이고은이 치열한 드라마 제작의 현장에서 스스로 일어서도록 길을 열어주고 지켜봐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신이 이미 처음의 이고은과 지금의 이고은을 차별대우하고 있는 셈이지요. 힘으로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부딪쳐 자신이 판단하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성민아가 프로이기에 이미 계약한 드라마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짊어질 것이라 예상했듯, 이고은도 스스로 극복하리라 믿었습니다. 그는 사람도 차별해서 신뢰하니까요. 회가 거듭할수록 차별조차 매력적인 앤서니에 대한 몰입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들의 드라마는 시작조차 못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