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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TV토론, 이정희는 과연 토론에서 이겼을까

 


 

어제 대선후보 공식토론에서 가장 활발했던 후보는 단연 이정희다. 그녀는 토론 말미에 '박근혜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그녀는 과연 그 목적을 달성한걸까..

확실히 투사처럼 박근혜를 몰아붙힌 이정희의 언행에 상당수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것이다.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을 언급하고, 피는 못 속인다는 말까지 운운하며 유신독재에 얽힌 어두웠던 과거를 공중파에서 낱낱히 고발하며 핏대를 세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어차피 절대 박근혜를 찍지 않을 사람이다. 이정희가 그런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나온것이 아니라 진정 박근혜를 떨어트리기 위해 나왔다면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지지자를 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필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대화를 했어야 했다. 지성과 명분을 배경으로 박근혜의 부족함이 드러나게 했어야 했다. 헌데 이정희는 토론 자체를 거부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박근혜를 토론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부분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라는 박후보의 물음에 ''됐어요'라는 말로 무시했고, 박근혜의 주장에 소 닭보듯 하다가 '이러이러하면 이렇게 한다고 약속하시겠냐'고 윽박질렀다. MB의 불통을 꼬집는 그녀 자신이, 토론의 장에서 박근혜와의 소통자체를 거부한 셈이다. 

 

분명 이정희가 박근혜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 혹은 박근혜와 수구기득권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정희의 모습에서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런 사람들에 한해서일뿐이다. 어차피 박근혜에게 표를 주지 않을 사람들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성향의 사람들에겐 어땠을까..

 

 

이정희는 박근혜를 '빵 없으면 케익 먹으면 된다'던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하지만 정작 이정희가 진정으로 상대해야 했던 사람은 마리 앙투아네트여야 했다. 혁명가들이 냄새나고 무례했기에 그들을 싫어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에겐 혁명가의 사상보다는 혁명가의 태도가 중요했다. 정치에 무관심하지만 엄연한 참정권을 가진 유권자들 중 상당수는 어쩌면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 말만 하는 이정희에게서 반감을 느꼈을 것이다. 고금을 들어 말 잘하는 사람이 사랑받기는 퍽 힘든 일이다. 사람은 논리로 설득되지 않는다. 내키게 만들어야 한다. 말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승리보다 더 큰 원한을 사게 된다는 냉혹한 현실이 간과됐다.

 

공수처가 왜 특별검사제보다 좋은지 설명을 요구하는 문재인에게 이정희는, '내가 공수처법 발인한 사람입니다'라고만 답했다. 시청자들에게 공수처의 강점을 설명할 기회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단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사퇴하지 않고 국가지원금 받으면 부도덕하지 않냐는 박근혜의 질문엔, '당신 떨어트릴려고 나왔다'고 했다. 지성으로 상대를 압도하기보다는 절반의 국민만 수용하고 있는 대의명분으로 상대를 누르려 했다.

 

오히려 문재인은 점잖았다. 박근혜의 공격에 미쳐 해명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도 많다. 지지자 입장에선 답답하고 억울했을 것이다. 문재인도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 아쉬움을 그는 견뎠다. 그래서 지지자는 서운했을 수 있지만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가 지적당한 문제점보다는 그의 신사답고 매너 있는 태도를 기억했을수도 있다. 이미지란 그런것이고 부동표의 향방은 옳고 그름보다는 좋고 싫음으로 판가름났다는 것을 지난 세월이 증명해왔다.

 

마찬가지로 박근혜도 견뎌냈다. 어쩌면 이정희가 대박을 칠수도 있었다. 그렇게 험하게 몰아세운 끝에 박근혜가 정말로 발끈해서 원고를 집어던지거나 퇴장을 해버렸다면 말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곤혹스러워 할지언정 끝까지 이정희를 표면적으로 존중했다. 그랬기에 이날 이정희가 박근혜를 무시하며 몰아세우는 장면은 예전 박근혜의 면도칼 테러를 연상시켰다. 상처입고 모욕당한 박근혜를 위해 보수가 대동단결했던 순간말이다.  어쩌면 박근혜는 이정희덕분에 약점으로 지적받던 TV토론에서 망외의 목표를 챙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정희는 물론 이런 지적을 혐오할 것이다.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갈테니 말이다. 그녀가 제도권의 정치인이 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