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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단일화TV 토론, 흥행보다는 단일화의 정신을 지켜내

 

 

우리 정치사에서 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TV토론의 장을 열었던 것은 조순과 박찬종이 격돌했던 1995년 서울시장 선거였습니다.

TV토론전까지만 해도 무소속의 박찬종은 스마트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지지도 1위를 지키고 있었지만, TV토론 직후 선거의 판도가 뒤집히면서 결국 조순이 시장으로 당선됐지요, 헌데 당시 토론 자체만 놓고 본다면 박찬종의 압승이었습니다. 모든 현안에 대해 박찬종은 막힘이 없는 달변으로 상대를 압도했고, 말주변이 그다지 없었던 조순은 질질 말을 끌며 눌변으로 일관했습니다.

 

이를테면, 조순이 '지금 한강의 수질은 약 몇 PPL 정도로..' 하면 박찬종은 소숫점까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풍부한 지식과 사리에 맞는 논리로 조순의 말문을 막아놨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순의 승리였지요, 지지율 1위였던 박찬종은 토론에서는 이겼지만, 본선에서 의외의 패배를 당했습니다. 이렇듯 상대를 토론현장에서 이기는 것과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온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단일화라는 것도 결국 상대를 이기는 것보다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일텐데요, 그래서일까요? 어제 토론은 불꽃 튀기는 신경전보다는 점잖은 분위기에서 치뤄졌습니다. 문재인은 마무리발언에서 상대의 장점을 열거하며 대선 이후엔 동반자 관계로 남을 수밖에 없는 서로의 숙명을 이야기했고, 안철수는 단일화가 서로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토론의 진행에서도 상대의 말꼬리를 잡거나 상대의 실언을 조목조목 따지지 않고 어느선까지만 밀어붙이되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는 모습이 수차례 감지됐지요, 구경꺼리가 있는 토론, 화제성을 끌어모으는 토론, 이길 수 있는 승부수를 던지는 토론, 다시 말해 흥행에 성공하는 대박 토론 대신, 두 사람은 상대 지지자의 감정을 상하지 않는 선에서, 즉 단일화의 정신을 지켜내는 토론으로 무난하게 마무리하였습니다.

 

최근 중단됐다가 재개된 단일화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양측 지지자간에는 감정싸움 양상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한쪽으로 단일화가 된다해도 다른 쪽 지지자의 표를 흡수하기가 곤란하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번 토론은 의미가 있습니다. 단일화의 목표가 상대를 누르는데 있지 않고, 상대를 아우르는 데 있음을 상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멋진 승부, 아름다운 승부란 결국 자신을 불확실성에 던지는 것일 겁니다. 상대를 찍어누르기보다는 세상에 자신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묻는 것이겠지요,
백범 김구 선생은 그 일이 가능한지 여부보다는 맞는 길인지를 따지라고 했습니다. 이날 두 사람은 그 질문을 국민에게 더불어 던진 셈입니다. 이제 유권자가 답할 차례입니다.